[신나는 공부/School Diary]시골학교의 정감있는 변신, 교장·학생 얼굴에 웃음가득

  • Array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경기 고정초 조남수 교장이 교내 사택앞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경기 고정초 조남수 교장이 교내 사택앞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조남수 교장(57)이 경기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에 있는 고정초등학교로 부임해온 것은 2010년 9월이었다. 고정초교를 처음으로 둘러본 그는 당혹스럽다 못해 황망하기까지 했다. 학교 주변에는 논과 밭뿐. 서울 목동에 있는 집에서는 차를 몰아 2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슈퍼마켓 하나를 가려 해도 4km 이상을 걸어야 한다. ‘선생 김봉두’란 영화가 절로 떠오르는 시골이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산간의 학교에 오게 되었을까….’

하루 4시간을 출퇴근으로 허비할 수 없는 노릇. 조 교장은 학교 바로 앞 교장 사택에서 아예 먹고 살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심심할 줄이야. 퇴근하고 나면 딱히 관심을 둘 곳이 없었던 이 적막한 곳에서 조 교장의 유일한 낙은 독서뿐이었다. 사택 앞 텃밭에서 고추니 깻잎이니 상추니 가지니 호박을 따다가 저녁식사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있노라면 전원생활의 운치가 느껴지기보단 한숨이 났다.

이때 조 교장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전교생 이름을 전부 외우자.’ 하긴 어렵지도 않을 것이 부임한 해 고정초교 전교생은 32명뿐이었다. 조 교장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면서 한 명씩 교장실로 불러 면담을 하고 가정환경을 알아보았다. 부모가 헤어진 뒤 조부모의 손에 길러지는 아이들도 적잖았고, 절반 가까이는 가정형편이 매우 좋지 않았다. 모두 빛나는 꿈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존감이 부족했고 늘 뭔가에 주눅이 들어있는 듯 보였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되찾아주자’는 것에서 조 교장의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먼저 학생들 스스로 “저는 참 소중한 사람입니다”를 인사말로 생활화하도록 했다. 전교생의 생일을 기억해 뒀다가 생일이 되면 아이를 교장실로 불러 손 글씨로 쓴 생일카드를 건넸다. 매일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서서 등교하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했다.

밤에 학교 운동장을 고즈넉이 걷던 조 교장은 귀가 요란할 만큼 들려오는 귀뚜라미와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곳이야 말로 체험학습을 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닌가.’ 아이들과 교사들이 참여하는 캠핑을 학교 운동장에서 열었다. 아이들이 직접 텐트를 치고 밤하늘의 별도 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 텃밭에서 상추를 따다가 운동장에서 삼겹살 파티도 벌였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이들은 고민이 있을 때면 ‘아무 때나’ 교장실에 들어와 펑펑 울면서 교장 선생님에게 흉금 없이 친구 얘기나 가정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느덧 조 교장은 교장이라기보다는 ‘아빠’ ‘할아버지’ 혹은 ‘심리상담사’가 되어있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아름답게 변했고, 조 교장도 변했다. 요즘 가족에게 그는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교장”이라고 말한다.

32명이던 학생 수는 1년여 만에 42명으로 늘었고, 학급 수는 전교 4개 학급에서 올해 6개 학급으로 늘었다. 10년 만에 6학급이 되어 ‘교감’선생님도 새로 부임했다(6학급 이상이어야 교감을 둘 수 있다). 조 교장은 “학부모들이 시골지역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낙후된 교육환경 때문인데, 교장과 교사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교육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면서 웃었다.

하지만 조 교장은 고민이다. 내년 3학년이 되는 학생은 4명인데, 1학년으로 입학할 예정인 고정초교 병설 유치원생은 단 3명이기 때문이다. 공립 초등교는 두 학년을 합친 인원이 10명이 안 되면 두 학년을 한 반으로 해 수업하는 이른바 ‘복식학급’으로 운영해야 한다. 학급 수가 줄면 교감 선생님도 다시 떠나보내야 한다. 화성에서

이영신 기자 ly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