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47>여주 목아박물관 박찬수 관장

  • 입력 2008년 10월 20일 02시 56분


“독립운동 심정으로 전통문화 보전”

조각 시작하며 자연스레 문화운동에 관심

부처님 진신사리등 3만여 유물-작품 모아

《경기 여주군 강천면의 목아박물관에 가면 마치 사찰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정문부터 사찰 입구의 일주문을 연상케 하고 안에는 대웅전을 본뜬 전시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야외정원 곳곳에는 돌과 금속, 나무로 조각된 불상이 서 있다. 박물관을 세운 목아(木芽) 박찬수(60) 관장의 모습도 평범하지 않다. 산신령 같은 흰 수염, 걸을 때마다 도포처럼 휘날리는 옷은 전설 속 도인을 떠올리게 한다.》

불교와 전통문화를 조각으로 만들어온 40여 년의 세월이 그대로 투영된 모습이다.

목아박물관에는 박 관장의 작품과 유물 등 3만여 점이 있다.

○“문화운동은 독립운동”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박 관장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이끌려 시골의 절을 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문화를 접했다. 그는 “한국의 전통문화 대부분이 불교문화”라며 “조각을 시작하면서 불교 공부를 깊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은 자유롭다. 박 관장은 “내 종교가 좋으면 남의 종교도 좋은 것”이라며 “종교를 교과서처럼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 천주교, 유교를 넘나드는 작품세계와 독창적인 조각기법을 선보였다.

박 관장은 1989년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만해상 등 내로라하는 상을 잇달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1996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으로 지정됐다. 대통령상을 받은 그해 여주에 박물관을 세웠다.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박 관장은 박물관을 세우고 운영하는 일을 독립운동에 비유했다. 박 관장은 “우리 문화를 지키고 알리는 일은 독립운동 하듯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해야 한다”며 “독립운동은 끝이 있지만 문화운동은 끝이 없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고 털어놨다.

○생활용품부터 진신사리까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인 박물관의 주 전시관에는 박 관장의 작품과 유물 5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3층에는 박 관장이 40여 년간 조각한 작품 200여 점이, 2층 불교유물실에는 통일신라시대 청동여래입상, 조선시대 소조보살좌상 등과 일본, 태국, 베트남 등 해외 불상이 전시돼 있다. 특히 1층 티베트 전시관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달라이 라마가 직접 금으로 쓴 글씨도 볼 수 있다.

박 관장은 “오랜 기간 티베트에서 생활한 한국인 한 분이 기증한 것”이라며 “많은 분이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박물관은 더는 내 개인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평상시에는 공개되지 않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불교 관련 서적 세 권은 보물로 지정됐다.

주 전시관 외에 단군신화와 관련된 조각상을 모은 ‘한얼울늘집’과 500개의 나한상이 있는 ‘큰 말씀의 집’, 사천왕상이 있는 ‘마음의 문’이 있다. 또 7, 8m 높이의 미륵삼존불입상 등 대형 조각품이 곳곳에 서 있다.

전시관의 한글 이름은 박 관장이 직접 붙였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능이 여주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한글”이라며 “그래서 박물관 입구의 일주문도 ‘맞이문’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한글 알리기와 함께 박 관장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다문화가정이다. 지난달에는 조선시대 생활용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어 200여 명의 외국인을 초청했다. 박 관장은 “다문화가정은 한국 전통문화를 접하고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며 “직접 만져 보고 체험하면서 진짜 한국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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