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문화&사람]<39>파주 영집궁시박물관 유영기

  • 입력 2008년 8월 18일 02시 55분


“한민족 삼위일체 수련이 양궁 최강국 밑거름됐죠”

동서양 활-화살 200점 전시… 신기전도 재현

5대째 활 제작… “국궁 부활의 그날 기다려”

사선에서는 70m 떨어진 10점 과녁이 점으로 보인다지만 한국 남녀 선수들에게는 커다란 공으로 보이는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2개를 따내 양궁 최강국으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온 국민이 손에 땀을 쥐며 “어쩌면 저렇게 잘 쏘느냐”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경기 파주시에 ‘영집궁시박물관’을 세운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弓矢匠·활과 화살을 만드는 사람) 유영기(73) 씨는 한국 양궁의 강세를 “활과 화살, 그리고 사수가 삼위일체가 되어 심신을 수련한 한민족의 전통이 이어진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어지는 활, 화살 재현품과 서양, 아프리카 등지의 활과 화살을 전시하고 있다.

유 씨의 증조부에서 시작한 이 집안의 활 만들기는 그의 아들까지 5대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가 엿보이는 활과 화살

유 씨가 자신의 호인 ‘영집’을 따서 2001년 5월 세운 이 박물관에는 동서양의 활과 화살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 전통 활의 특징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나무를 이어 붙여 몸통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유연한 대나무와 힘 좋은 뽕나무를 전통 접착제인 민어의 부레로 붙이고 소의 힘줄로 묶어주는 방식이다.

“서양에서는 철제 활도 만들었지만 유연함과 강인함이 결합된 우리의 목재 활만 하겠어요? 각 재료의 좋은 점을 모으면 더 큰 힘이 생기니까요.”

박물관에는 한 번에 100발 이상을 발사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연발로켓포’에 해당하는 신기전도 재현해 전시되어 있다.

인도, 몽골, 일본은 물론 아프리카, 유럽의 활과 화살도 볼 수 있다. 대개가 단일한 목재를 사용해 한국 것과 차이를 나타낸다.

보통의 화살 절반인 30cm짜리 ‘아기살’도 있다. 조선시대에 보통의 활이 아닌 석궁 모양의 틀에 넣어 쏠 수 있게 한 화살로 적군의 활에는 맞지 않아 재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무기다.

제주도의 검정 소뿔로 만들었다는 ‘각지’는 활시위 당기는 엄지손가락에 끼우는 보호 장구다.

요즘이야 단일재료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화살이지만 전통 화살은 세 마디로 자란 대나무와 싸리나무, 꿩의 깃털로 만들어 탄력과 화살의 강도가 높다는 점도 박물관에서 배울 수 있다.

○궁시장을 키운 것은 한량

유 씨는 “내가 평생 좋은 활과 화살을 만들게 한 주인공은 활터에서 활을 쏘던 한량들”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장기간에 걸쳐 만들어도 사람 몸에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수의 몸무게와 키, 팔 길이 등 신체 조건에 맞는 활과 화살이라야 명궁이 태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요즘이야 한량이란 단어가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예전에는 멋과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며 “지금으로 치면 소비자 불만을 잘 접수해 제품 개량에 힘쓴 게 좋은 활을 만들게 한 셈”이라며 웃었다.

그의 아들 세현(45) 씨가 5대째 전통 활 만들기의 맥을 잇고 있다.

가끔 방송국에서 사극을 촬영할 때 소품으로 활을 주문하는 것 외에는 대량 주문하는 일이 없다는 게 아쉬운 점.

유 씨는 어린이들이 단체로 활과 화살 만들기 체험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어 언젠가는 궁시장을 만들어냈던 한량이 많았던 것처럼 다시 국궁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변의 가 볼 만한 곳

예술인 마을 헤이리와 영어마을 파주캠프 등은 차로 5분 이내에 도착할 거리. 성동 나들목으로 진입해 성동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카트를 탈 수 있는 카트랜드, 자동차 극장이 있다. 축구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도 있다.

파주의 명물 장단콩을 재료로 만들어 전통의 맛을 알게 해주는 ‘창하된장’(031-946-3504)은 박물관과 이웃해 있다. 재래식으로 장을 담그면서도 염도를 낮춰 건강식으로 인기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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