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33>종로 유금와당박물관 유창종 변호사

  • 입력 2008년 7월 7일 02시 59분


검사 시절부터 기와와 와당에 심취했던 유창종 변호사가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유금와당박물관을 열었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모은 와당과 전돌 27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검사 시절부터 기와와 와당에 심취했던 유창종 변호사가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유금와당박물관을 열었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모은 와당과 전돌 27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한국과 중국, 일본의 와당(瓦當)을 조사하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 흔적이 남아 있어요. 검사의 사건 수사 능력이 와당 문화의 전파 경로를 추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와당은 기와의 한쪽 끝에 붙인 둥근 모양의 판이다. 독특한 문양을 새겨 제작 당시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서울지방검찰청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거친 유창종(63) 변호사는 한국기와학회를 만든 기와, 와당 전문가.

지난달 1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유금와당박물관을 열었다. 박물관 터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과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자리이다.

○ 충주지청 근무 시절 ‘입문’

유 관장의 수집 이력은 충북 충주지청 검사였던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 시절부터 철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검사가 된 뒤에는 아마추어 미술사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주말마다 충주 일대를 돌았고 백제·신라·고구려의 특징을 모두 가진 탑평리 ‘육엽연화문’ 기와를 발견하면서 기와에 흠뻑 빠졌다.

“햇살에 와당을 비춰 보면 도공의 지문 자국이 보여요. 수백 년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 혼을 느끼니 인연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깨달음이 크죠.”

처음에는 유적지에서 와당을 주웠지만 성에 차지 않자 골동품 가게를 돌며 하나 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에는 와당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그림을 사면 덤으로 얹어줬다.

공무원 월급을 털어 24년 동안 일본인의 전문수집품까지 사들였던 그는 기와와 와당 1875점 모두를 200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자신이 수집한 와당은 이제부터 사유물이 아니라는 뜻에서였다.

“와당을 공부하면서 한국인이 청출어람의 재주를 가졌음을 눈으로 확인했어요. 선조들은 중국에서 받아들인 문화에다 창의력을 발휘해서 수준을 더 높이는, 그런 능력을 가졌어요.”

○ 낙랑∼조선시대 와당 2000점

유금와당박물관은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모은 와당, 전돌 2700여 점과 토용(토기 인형), 토기 1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1301점은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와 1082점을 반환한 일본인 의사 이우치 이사오(井內功·1911∼1992)의 아들 이우치 기요시 씨가 2004년 넘겨준 것.

“기요시 씨가 기와에 통 관심이 없는 자신의 딸보다 제가 적임자라며 기와를 넘기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국보급 수집품을 제값으로 인수하는 건 불가능했어요. 가격대로는 못 산다고 말하고 사회에 공개할 테니 기증한다는 마음으로 넘기라고 했어요. 기요시 씨와의 약속 때문에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기요시 씨는 운반비까지 부담하며 소장품을 한국으로 보냈다. 토용과 토기는 의상을 전공한 부인 금기숙 홍익대 교수가 따로 모은 것.

“앞으로는 와당을 국가, 시대, 유형별로 전시하거나 서로 관계가 있는 와당끼리 묶어 보여 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할까 합니다. 기와 관련 교육과정도 따로 만들 계획입니다.”

유금와당박물관은 개관을 기념해 11월 말까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소장품 중 100여 점을 엄선해 ‘한국 와당, 수집 100년 명품 100선’ 특별전을 연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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