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학교에 마을도서관을]“산속마을서 뛰놀던 기억…”

입력 2008-10-28 02:59수정 2009-09-2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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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산천에서의 경험이 모두 제가 쓴 책 속에 녹아 있어요. 곳곳에 단풍이 든 산이 보이고 공기도 맑은 이곳에서 공부하는 여러분은 참 행복한 거랍니다.” 동화작가 원유순 씨는 “어린 시절의 다양한 경험이 지식과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 제공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140호 영월 녹전초교

21일 단풍이 든 강원 영월군 수라리재를 넘자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다리 맞은편에 녹전초등학교 교정이 보였다. 10여 년간 인근 마을의 세 학교가 하나씩 폐교된 뒤 통폐합됐으나 여전히 전교생 48명이 전부인 아담한 학교다.

산등성이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지만 읍내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로 30여 분을 가야 할 만큼 다른 시골학교와 비교해서도 지리적 환경이 열악한 편. 이곳에서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동아일보, 네이버가 함께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의 140번째 학교마을도서관이 개관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영월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동화작가 원유순(51) 씨가 동행했다. 원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교장선생님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영월군 주천면의 중선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는 “영월에서 보낸 2년간의 특별한 기억들이 동화작가로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꼭 오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에게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던 원 씨는 1990년부터 ‘까막눈 삼디기’ ‘열 평 아이들’ ‘마지막 도깨비 달이’ 등 40여 권의 동화책을 펴냈다.

“이사 오던 날 트럭 뒤에 앉아 담요를 쓴 채 원주에서 영월로 가는 고개를 넘었습니다. 가도 가도 자갈산길이라 하루 종일 먼지가 일었어요. 할머니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눈물을 훔치실 정도였죠.”

영월에 대한 첫 기억으로 말문을 연 강연회에는 40여 명의 학생과 10여 명의 학부모가 모여 원 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초봄이면 양지에는 새싹이 돋고 3월이면 진달래가 피죠. 4, 5월엔 종다래끼를 든 채 나물, 두릅을 캐러 산에 올랐어요. 6월에는 산딸기를 따먹고 여름이면 영월 서강에서 자맥질을 하고…. 철마다 자연에서 뛰논다고 정신이 없었어요.”

원 씨는 이곳에서 보낸 사계절을 1993년 계몽아동문학상 수상작인 ‘둥근 하늘 둥근 땅’에 그대로 담아냈다. 그가 누볐던 영월 산천이 동화 속 풍경으로 고스란히 살아난 것. ‘뫼다리 마을의 섶다리 놓는 날’이란 동화 역시 겨울철 강물이 말랐을 때 강 건너편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를 엮어 다리를 만드는 영월의 고유한 전통을 소재로 했다.

“이야기를 쓰려면 지식, 상상력,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그 경험은 책, 생각, 재능으로부터 올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 경험만큼 큰 원천이 되는 것이 없어요. 도시 아이들처럼 교육환경이나 문화시설이 좋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그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들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강연을 들은 학부모 김영실(40) 씨는 “도시에 비해 모든 면에서 뒤처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도 주변 환경에 감사하며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영감을 심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 조희화(39) 씨는 “이번 기회에 옛 추억이 담긴 원 선생님 작품들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날 개관식을 맞아 3300여 권의 책이 지원됐으며 영월교육청 허대영 교육장, 강원도의회 고진국 의원 등이 참석했다.

영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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