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책장 넘기며 향수 달래요”

입력 2008-07-24 02:49수정 2009-09-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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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양구 방산초교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삼총사

고맙다! 모국책… 반갑다! 추억여행

강원 양구군 방산면에서 애호박 농사를 짓는 장명희(36) 씨. 중국 하얼빈에서 한국에 온 지도 벌써 11년째다. 햇수에 걸맞게 장 씨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또박또박 정확한 한국어 발음에 강원도 방언까지 구사한다.

“목소리만 들으면 영락없는 한국인 같다”고 인사를 건네니 남모르게 흘린 눈물도 많았단다. “한국말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남들 웃을 때 웃지 못할 때가 곤혹스러웠어요.”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 요즘 난감한 건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모국(母國)인 중국에 대해 물을 때다.

“작은 애가 이것저것 물어요. 중국인들은 이런 거 해? 중국에서는 뭐가 유행이야? 중국 전문가가 꿈이라는 자식에게 중국인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중국어 몇 마디뿐이네요.”

몸 구석구석에는 한국인의 양식이 배어도 피는 못 속이는 걸까.

10일 개관한 방산마을도서관에서 장 씨가 처음 집어든 책은 오늘의 중국을 담은 ‘중국 읽기’였다. 장 씨에게 고향을 잊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란다.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엄마는 모두 네 명. 얼마 전 해산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학부모를 제외하고 이들이 다 같이 모인 건 이날이 처음이다.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동아일보, 네이버가 함께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의 126번째 캠페인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외국인 주부 삼총사는 오랜만에 고된 농사일을 잊고 웃음꽃을 피웠다.

“어머, 일본 사람이 쓴 책이 이렇게 많네요.”

일본에서 온 지 각각 12, 10년째인 가와모토 다에(47), 우에나가무라 구니코(46) 씨가 단번에 집어든 책도 일본에서 건너온 번역서들이었다. 가와모토 씨는 ‘1일 30분 인생 승리의 공부법’, 우에나가무라 씨는 ‘조선청년 역도산’을 꺼내들었다.

“한국에 산 지 10년이나 됐지만 그렇다고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 될 수는 없잖아요. 다림질 하다가 TV에서 일본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갑니다.”(우에나가무라 씨)

10년차 주부 우에나가무라 씨에게는 모국을 부끄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딸 희수(10)가 역사책을 들고 와 일제강점기를 물어볼 때면 미안함과 서러움이 밀려왔다. 인터뷰 도중 그는 당시의 생각이 나는 듯 울음을 참지 못했다.

“죄스러운 마음을 갚으려 누구보다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어요.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덕에 단어와 문장은 금세 익히겠는데 아직도 된소리가 어려워요.”

우에나가무라 씨가 꼽는 효과적인 한국어 공부법은 책읽기다. 소리로 듣고 따라하는 것과 책을 보며 눈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것은 학습 효과부터 차이가 난다고 한다.

가와모토 씨에게 책은 “아이의 또 다른 뿌리를 알려주는 선생님”이다. 책장에 꽂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보며 “어? 내가 학창시절 읽었던 책이네” 하며 반가워하던 그는 이제 아이들에게도 엄마와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책이 생긴 것 같다고 한다.

“애들이 물어봐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은 어떻게 생겼어?’라고요. 비행기 삯이 만만찮아 결혼한 뒤 일본에 한 번도 못 갔어요. 그렇지만 아이들이 책 속 사진과 글을 보며 엄마 나라인 일본을 익힐 수 있게 됐잖아요.”

경희대 이가령 교수의 ‘우리 아이 즐거운 책읽기 어떻게 도와줄까’ 강의에 이어 오후 2시 체육관에서 열린 개관식에는 방산초교 김동수 교장, 이희종 강원일보사장, 전창범 양구군수, 김두경 양구교육장 등이 참석했다.

양구=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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