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주제:언론의쏠림현상

  • 입력 2007년 10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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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인 한 독자가 언론의 ‘쏠림 현상’을 지적하는 편지를 본보 독자인권위원회에 보내 왔다. 언론의 입맛에 맞는 이슈가 터지면 집중 과잉 보도로 인권 침해까지 야기하면서,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다른 중요한 사안은 소홀하게 다루고 흘려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4일 본사 회의실에서 이 편지를 소재로 좌담회를 가졌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양우진(영상의학과 전문의)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황도수(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

특정 이슈에 지나친 지면 할애… 정보 편중 초래

―쏠림 현상의 사례부터 짚어보지요.

▽김일수 위원장=그 독자는 신정아 사건에 엄청난 지면을 할애하면서, 왜 수많은 인명, 재산 피해를 가져온 태풍 ‘나리’ 관련 보도에는 그렇게 소홀했느냐는 예를 드셨어요. 신정아 사건은 물론 남북 정상회담 보도를 보면서 “하루 지면에 이렇게 많은 기사를 쏟아내다니” 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동서독 정상회담을 했는데 대부분의 신문이 2개면 정도 다뤘어요.

▽윤영철 위원=보도 가치의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점에서 불균형이 관찰되고, 이로 인한 인권 침해도 우려됩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의 경우 같은 한국인 피랍 사건인데도 하나는 집중 보도한 반면 다른 하나는 소홀했습니다. 미얀마의 인권 문제를 대서특필한 기사를 보면서, 과연 북한의 인권 문제에는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양우진 위원=소말리아와 아프간 피랍, 태풍 나리와 신정아 사건 등에서 나타났던 쏠림 현상은 취재 양의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언론의 시각을 독자에게 강요하기보다는 물리적으로 전달한 다음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등 취재 현장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팩트(사실) 자체를 기준으로 하되 ‘포샵’(포토샵) 없이 보도하는 주관이 요구됩니다.

▽황도수 위원=쏠림 현상은 공급자인 신문이 소비자인 독자의 수요를 맞추려다 빚어진다고 봅니다. 흥미를 자극하거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사안만 따라가다 보니 자칫 피해자를 노출하거나 불필요한 사진을 게재하는 등 주변 사람의 초상권을 훼손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거든요. 특정 사안에 지면을 집중 할애하다가 다른 이슈가 터지면 그 사안은 잊어버리고 다음으로 옮겨가는 보도 방식은 사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토론의 광장을 마련할 기회마저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쏠림 현상 역기능, 부작용에 대해….

▽윤영철=언론이 처한 시장 환경이 쏠림 현상을 낳는다고 봅니다. 여유를 두고 심도 있게 분석하려다 보면 속보성이 떨어져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니, 상업적 요소를 갖춘 이슈에 지면을 집중적으로 할애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유사한 이슈라고 해도 독자의 관심사를 우선하다 보니 언론이 외면하는 사안에서는 본의 아니게 희생자가 생겨나게 됩니다.

▽황도수=언론이 판단 기능을 일방적으로 장악하기 때문에 언론 소비자의 정보 수집이 편중되는 현상을 낳습니다. 대선 정국에서 불리한 상황의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이슈를 터뜨려 나가면서 ‘언론 플레이’에 나설 경우 정치공학적 책략에 역이용당할 위험성도 우려됩니다.

▽김일수=집중과 쏠림은 균형감각을 가진 독자의 알 권리를 훼손하고 마음의 상처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집중포화의 유탄이 본의 아니게 피해자를 만든다면, 언론으로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셈이 됩니다. 신정아 사건도 특정 인물의 개인사로 번져가면서 숨겨진 비자금으로까지 유탄이 터졌거든요. 예측 가능성이 없어 이성의 원칙으로는 해석하기 어렵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감성만 넘치게 됐다고 할까요.

―대안을 제시해 본다면….

▽윤영철=인터넷 미디어의 쏠림에 휩쓸리지 않고 신문이 방향성을 바로잡아 가야 합니다. 아프간 피랍 사태를 다룬 인터넷 기사에 특정 교회를 비판하는 댓글이 범람하는 등 여론의 큰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신문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만 전하며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을 했으니 평가하고 싶습니다.

▽양우진=인터넷 시대의 관심 분야를 따라가기보다는 차별화하는 독자적인 방향 설정이 바람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종이신문을 선호하는 그룹은 ‘침묵하는 다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고유한 신문 독자의 관심 분야를 좀 더 충실히 반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일수=‘정윤재 사건’은 집중보도가 없었다면 밝혀지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에서 쏠림 현상의 순기능도 엿보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라면 아무리 집중해도 독자가 식상해하지 않겠지요.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은 자율과 균형과 조화 속에서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통신과 인터넷을 서핑하는 손쉬운 취재 방식으로는 쏠림과 획일성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요. 발로 뛰는 현장 취재가 많아지면 쏠림 현상도 줄어들 것입니다.

사회=송영언 독자서비스센터장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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