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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싹트는 교실]‘학원 뺨치는 수업’ 서울 한신초교

입력 2009-04-11 02:56업데이트 2009-09-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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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신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이 학교가 자체 개발한 한자 교재 ‘한자한자 한신한자’를 든 채 웃고 있다. 이 학교는 1970년대부터 한자 교육을 실시해 왔으며 2004년부터는 국한문 혼용 국어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한자 섞인 국어교과서 직접 만들었어요”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한신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매일 퇴근할 때 커다란 쇼핑백을 하나씩 들고 간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오해(?)하기 좋은 모습이다. 올해 초부터 이 학교에서 경비업무를 보고 있는 김모 씨도 그랬다. 김 씨는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쇼핑백을 집에 들고 가는 걸 보고 ‘아, 사립학교는 선생님들이 매일 선물을 저렇게 많이 받아가는구나’ 했다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쇼핑백이 전부 애들 공책이지 뭐예요”라며 웃었다.》

매일 공책 걷어 첨삭하고 예습자료 붙여줘

한문-영어 꾸준히 외워 졸업때면 자유자재

소문 퍼져 “교재 빌려달라” 他학교 요청 쇄도

한신초등학교 담임교사들은 매일 자기 반 학생들이 정리한 공책을 첨삭지도한다. 저학년들에게는 바른 글씨체를 갖도록 돕고, 고학년들에게는 수업 내용을 기억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설명을 달아 준다. 다음 날 수업 시간에 쓸 자료도 미리 공책에 붙여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학교의 정규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3시. 그 시간까지 첨삭지도가 끝나는 날은 거의 없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같은 학년 담임교사들끼리 모여 다음 날 수업 계획을 세운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거의 매일 학생들의 공책을 집까지 들고 간다.

1학년 부장 우승희 교사는 “회의에서 나온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골라 똑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해준다. 칠판 판서까지 똑같다”고 말했다. 담임교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학부모의 희비가 엇갈리는 공립학교와는 다른 풍경이다.

학생들도 공립학교에 비해 할 일이 많다. ‘한자한자 한신한자’ 교재에 실린 한자(漢字) 중 매일 한 글자를 선택해 10번씩 써야 한다. 영어교재 ‘한신444’에 나온 생활영어 표현도 일주일에 두 문장씩 외워야 한다. 졸업할 때까지 444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목표다.

황병무 교장은 “얼핏 많아 보여도 ‘할 수 있는 만큼만 반드시 하자’는 목표로 하루에 5∼10분이면 할 수 있는 분량만 내주는 것”이라며 “사립초등학교 교사라고 월급이 더 많은 것도 아닌데 선생님들의 업무량은 다른 학교에 비해 많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국어 교과서도 남다르다. 내용은 보통 학교에서 배우는 국정교과서와 같지만 학년별로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낱말은 한문으로만 적혀 있다. 황 교장이 2004년 직접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와 출판사를 뛰어다니며 무료 저작권 사용 허가를 받아내 얻은 성과물이다. 황 교장은 “수업료를 받는 사립학교에서만 가능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발품 팔고 신경을 써야 할 뿐 돈이 드는 프로그램은 없다시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대구 울산 경기 강원 등 전국 각지의 공립학교에서 “그 교재를 우리도 좀 쓰면 안 되겠느냐”는 문의가 이어졌다. 황 교장은 흔쾌히 사용을 허락했다. 황 교장은 “한 초등학교에서는 ‘한신444’ 교재 겉표지에 나온 학교 이름만 자기 학교로 바꿔 쓰다가 교재 내용에 ‘한신초등학교’가 여러 차례 등장해 난감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프로그램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학교는 서울 후암초등학교. 최화순 후암초등학교 교장과 황 교장은 춘천교대 1년 선후배 사이로 최 교장이 직접 한신초등학교를 방문해 노하우를 얻어갔다. 두 학교는 연두색과 노란색으로 칠한 학교 건물까지 비슷하다.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좋지 못했던 후암초등학교는 최 교장이 부임한 후 서울시내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학교로 거듭났다.

▶본보 2008년 12월 26일자 A12면 참조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공·사립학교 간 교원 교류가 있을 때 한신초등학교 출신 교사들은 학교장들이 0순위로 모셔가고 싶어 한다”며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이 학교 교육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황 교장은 “아이들을 위해 좋은 프로그램은 학교끼리 서로 나누는 것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 그것이 공교육을 살리는 길”이라며 “우리가 알려드릴 게 있다면 얼마든지 알려드리고 또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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