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파워그룹 그들이 온다]<7>행정고시 출신 여성 공무원

입력 2006-01-19 03:22수정 2009-10-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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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에 있었던 교육인적자원부의 인사는 정부 공무원 사이에 화제가 됐다. 행정고시 33회인 박춘란(朴春蘭) 대학정책과장이 만 40세로 정부 부처를 통틀어 최연소 여성 부이사관(3급)으로 승진했기 때문. 박 과장은 뛰어난 기획력과 친화력으로 많은 고시 선배를 제치고 발탁됐다. 박 과장뿐만이 아니다. 행시 출신 여성 공무원들은 이미 관가(官街)의 새로운 파워그룹으로 부상했다. 부처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행시 출신 여성 고위 공무원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행시 합격자의 44%가 여성이어서 여성 공무원의 활약은 앞으로 두드러질 전망이다.

○ 작년 行試합격자 44%가 여성

정부 부처 최연소 여성 부이사관인 박 과장은 2004년 사교육비 경감대책과 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등 굵직굵직한 업무를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미국 연수 때 뉴욕 주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미국 교육제도를 제대로 알려면 공법체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교육부는 행시 출신 여성 공무원이 많은 부처여서 박 과장은 후배들의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아동과 노인 등 여성이 맡기에 상대적으로 적합한 업무가 많아 행시 출신 여성 공무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선두 주자는 행시 25회인 장옥주(張玉珠·47) 국장. 연금, 노인복지, 아동정책 등을 담당하다가 현재 노동부에 파견돼 노동보험심의관으로 일하고 있다. 장 국장은 “행시 합격 당시만 해도 정부 부처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다”며 “이후 거의 매년 여성 후배가 들어와 복지부에만 26명이나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를 제외하고 정부 부처에서 처음으로 지난해 여성 홍보관리관으로 임명된 노동부 정현옥(鄭賢玉·49) 국장. 행시 28회로 산업안전과장, 노사협의관, 근로기준과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초대 노무관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소신과 배짱으로 업무를 추진하면서도 후배를 잘 이끌어 ‘맏언니’로 통한다.

환경부 이필재(李弼載·44) 감사관은 지난해 2월 정부 부처의 첫 여성 감사관으로 임명됐다. 행시 29회로 1986년 환경부에 배치된 이후 지금까지 ‘환경부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독차지했다.

○ 조직에 활력 불어넣는 새 얼굴들

17일 발표된 국정홍보처의 인사 내용은 여성 ‘영 파워’의 위력을 잘 보여 줬다. 핵심 보직인 홍보기획팀장에 공직 경력이 4년 9개월에 불과한 30세의 이선영(李善英) 사무관이 임명된 것.

행시 44회인 이 팀장은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와 해외홍보원 등에서 일했다. 그는 정부 부처의 5급 사무관 팀장 가운데 최연소다.

경제 부처에서도 행시 출신 새내기 여성 공무원들은 ‘차세대’로 주목받고 있다. 여성들은 특히 경제협력과 국제금융 등 국제부문에서 두드러진다.

2002년 행시(46회)에 합격해 2003년부터 재정경제부에서 근무 중인 정여진(鄭如珍) 국제금융과 사무관은 지난해 6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외국 참석자들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한국에도 여성 공무원이 있느냐”고 물은 것.

“의외의 질문이라 당황했어요. 그만큼 국제무대에서 여성 공무원의 역할이 미미했다고 봐야죠. 여성의 부재로 국제협상에서 한국이 적지 않은 불이익을 받은 것 같아요.”

정 사무관은 어학 능력과 친화력을 무기로 국제협상 전문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행시 44회인 재경부 김연준(金娟準) 금융허브기획과 사무관은 재경부 근무 2년 만인 2002년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양허안을 만든 주인공. 한국 금융시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꿈이다.

산업자원부에서 일하는 행시 출신 여성 공무원은 22명으로 절반 이상이 국제협력 또는 통상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국제부문에서 여성 공무원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국제회의나 협상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상대적으로 좋은 여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서비스정신과 치밀함으로 무장

행시 35회로 노동부 고용전략팀장을 맡고 있는 박성희(朴星希) 서기관은 공직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박 서기관은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가 쏟아져 나올 때 고용업무를 맡았고 2002년에는 실업대책추진단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 2년간 미국 듀크대에서 국제경제개발 분야를 연구하고 지난해 귀국해 고용전략을 짜고 있다.

박 서기관은 “앞으로 공직사회에서는 군림하는 방식보다는 서비스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여성의 감수성이 위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친화력도 여성 공무원이 각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교육부의 박 과장은 “업무에 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꼼꼼하다”고 말했다.

재경부 김익주(金翊柱) 국제금융과장은 “여성 공무원은 섬세한 데다 업무도 책임지고 잘 처리한다”며 “부서 분위기도 좋아져 최근에는 각 국실에서 서로 ‘모시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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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정부 우대정책도 한몫

관가에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고 있는 데는 행정고시 합격자의 증가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는 간부급 여성 공무원을 늘리기 위해 2002년 초 ‘여성 관리직 확대 5개년 계획’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도입 당시 4.8%였던 5급 이상 여성 공무원의 비율을 2006년 말까지 1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최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48개 중앙 행정부처의 5급 이상 여성 공무원의 비율은 2005년 10월 말 현재 8.1%로 높아졌다. 여기에는 일반직은 물론 별정직, 일반 계약직, 외무직 등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과장급(4급) 이상 간부 가운데 여성이 1명도 없는 부처는 올해 말까지 적어도 1명 이상을 임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승진 때 여성을 가급적 우대한다는 지침도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 인력을 우대하는 것은 관료적인 정부 부처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 여성 공무원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 또 특화된 부문에서는 여성 인력이 여성 나름의 장점을 살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여성 관리직 확대 정책을 바탕으로 여성 공무원이 약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능력보다는 배려에 의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행시의 여성 합격률이 △2003년 33.5% △2004년 38.4% △2005년 44%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어 이 같은 비판도 점점 설득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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