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6년 埃 나세르 대통령 선출

  • 입력 2004년 6월 22일 18시 41분


사담 후세인(이라크),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 하페즈 알 아사드(시리아), 야세르 아라파트(팔레스타인)….

아랍의 풍운아들은 모두 나세르의 정치적 적자(嫡子)였다. ‘아랍의 대의(大義)’ 아래 민족주의 세력을 결집시키고자 했던 ‘중동의 사자’ 나세르의 후예였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존재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으니.

후세인은 체포됐고, 아사드는 숨졌으며, 카다피는 ‘투항’했다. 아라파트는 미미해졌다.

반세기 전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면서 시도했던 범(汎)아랍주의의 정치적 실험은 쓸쓸한 바닥을 드러낸다. ‘나세리즘(Nasserism)’이 약속한 미래는 ‘조용한 악몽’으로 끝나가고 있다.

아랍 통일의 꿈은 한낱 수사(修辭)로 전락했고, 이스라엘을 소멸시키고자 했던 반(反)시오니즘은 무망하다. 경제는 흐늘거리고 민주주의는 아득하니.

‘나일강의 기적’ 가말 압델 나세르.

1952년 7월 34세의 청년장교는 자유장교단을 이끌고 영국의 비호를 받아 온 파루크 왕정을 무너뜨렸다. 무혈쿠데타였다.

그리고 4년 뒤인 1956년 6월 23일. 그는 페르시아제국에 몰락한 이래 2000년 넘게 ‘자기 땅에 유배(流配) 됐던’ 이집트인들에 의해 공화국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바로 한 달 뒤 그는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다. 화물선의 밑창을 뚫어 운하 입구에 침몰시켰다. 봉쇄였다!

“누가 제국주의자들에게 멈추라고 외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변이었다.

국유화 조치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을 불러 2차 중동전쟁의 불을 댕겼다.

역사(歷史)는 이 ‘수에즈 전쟁’의 거울을 통해 지금의 이라크전쟁을 비춰 본다.

미국은 왜 이라크를 쳤는가.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은 왜 이집트를 쳤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서방세계는 아랍민족주의를 겨냥하고 있었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대서양 동맹’은 심각한 균열을 앓고 있다. 그때는 미국이 군사 개입에 반대했고, 지금은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에 맞서고 있다.

그리고, 그때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정치적으로 패배했다. 국제적인 비난에 밀려 한 달 만에 군대를 철수시켰다. 패퇴(敗退)했다.

그러면 지금은? 이라크에선 분명 미국이 이겼다. 그리고 그 다음은? ‘진행 중’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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