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4년 천재 수학자 튜링 自殺

  • 입력 2004년 6월 6일 18시 31분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27세에 이미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튜링 머신’을 고안했다.

연산컴퓨터 ‘콜로서스’를 만든 게 1943년. 세계 최초로 알려진 ‘에니악’보다 2년을 앞선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난공불락이었던 독일의 ‘애니그마 암호체계’를 뚫고 들어갔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 그는 적국의 교신 내용을 ‘수신자’보다 먼저 해독하고 있었다. “그가 없이도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단 한 가지, 자신의 성적(性的) 취향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쓰레기처럼 내동댕이쳐진다.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10년간 감옥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을 것인지 양자택일을 명령한다.

에스트로겐 주사는 일종의 ‘화학적 거세(去勢)’였다.

지속적인 여성호르몬의 투입으로 그는 치명적인 신체의 변화를 겪게 된다. 발기불능, 중추신경계 손상….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유방(?)이었다.

그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1954년 6월 7일. 튜링은 치사량을 정확히 계산한 뒤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사과에 주사했다. 그리고 백설공주처럼 ‘독사과’를 베어 문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사회가 나를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순수한 여자가 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그것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사형선고를 내린 동시대에 대한 야유였다.

열다섯의 나이에 수학 교과서가 지루했던 천재 튜링. 그는 인공지능 개념을 처음 생각해냈다. “답이 컴퓨터에서 나왔는지 사람의 뇌에서 나왔는지 분간할 수 없다면 기계는 이미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기 전 그는 생명체의 형상 생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신의 비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던 것은 아닐까.

그 후 20여년이 흐른 뒤,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인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그 이름을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모양을 로고로 택한다.

‘진정한 컴퓨터의 아버지’에 대한 경의(敬意)였을까.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