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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23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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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의 조난신호 ‘SOS’.
SOS는 1912년 호화여객선 타이태닉호가 침몰했을 때 위력을 발휘했다. 해운사상 유례없는 대참사에서 700명 이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SOS 덕분이었다.
그 이듬해 SOS는 공식 조난신호로 채택된다.
SOS는 흔히 ‘Save Our Souls’ 또는 ‘Save Our Ship’의 약자로 알려져 있으나 단지 가장 알기 쉬운 신호라서 ‘간택’됐을 뿐이다.
초상화를 그리던 미국의 뜨내기 화가 새뮤얼 모스.
1832년 그는 뉴욕행 증기선 슈리호에 몸을 싣고 있었다. 배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교수와 전자기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무릎을 쳤다. “전류의 단속(斷續)을 통해 알파벳과 숫자를 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즉석에서 단점(dot)과 장점(dash)을 조합한 전신부호를 스케치북에 그려나갔다. 그렇게 해서 단어와 간단한 문장을 짜 맞춘 8000개의 은어(隱語)표가 만들어졌으니 그게 모스부호다.
1844년 5월 24일. 모스는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64km 떨어진 볼티모어까지 전선을 설치하고 역사적인 시연을 가졌다. 그때 띄운 전문은 이랬다. “하느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이리 크뇨!”(구약 민수기)
전신선은 이내 미 전역으로 뻗어나갔고, 1852년에는 유럽 전체에 깔리게 된다. 이후 무선전신이 개발되면서 모스부호는 장거리 통신의 총아로 떠오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즐겨 들었는데, 세 번 짧고 한번 긴 박자 ‘단단단 다(··· -)’가 모스부호의 ‘V’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라고.
전신은 그 시대에 이미 ‘생각의 고속도로’로 불렸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비견된다.”(더 타임스)
그것은 인류 최초의 ‘리얼타임(real-time)’ 통신이었다.
전신은 기존 통신수단의 시간적 지체(遲滯)를 극복했다. 정보의 동시성은 공간의 ‘공유(共有)’, 그 원격조종과 지배를 가능하게 했다.
말하자면 ‘세계화’의 전초(前哨)였던 거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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