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경찰 불심검문 권한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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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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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데 경찰이 갑자기 신분증을 보자고 요구할 때가 있다.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듯해서 기분이 나쁘지만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5월 27일 의결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에 따르면 불심검문은 앞으로 직무질문→신원확인→임의동행의 절차로 진행된다. 신원확인 시 경찰관은 대상자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다. 신분증이 없으면 동의를 얻어 지문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에서 신원확인이 불가능할 경우 경찰관서로 임의동행을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경찰의 불심검문 권한을 강화하는 데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찬성]검문조항 법률로 구체화한 것

진술강요 없고 거부시 구속여부도 현행과 같아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 개정안에는 테러·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다중밀집시설 등에 대한 출입자에게도 직무질문을 할 수 있고 신원확인을 거부하면 해당 시설 장소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이 부분은 삭제했다.

행안위를 통과한 내용에서 기존의 불심검문 조항을 단계별로 직무질문, 신원확인, 임의동행으로 세분한 것은 현행 규정을 좀 더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신원확인을 위한 신분증 제시 요구나 차량 또는 선박의 적재물에 대한 조사 근거는 지금까지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의 관행을 법률에 더욱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도 대폭 반영했다. 경찰관이 임의동행을 할 때는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사전에 고지하도록 했다. 대상자가 원할 경우에는 변호인도 참여시킬 수 있도록 했다. 또 그동안 법령에 근거가 없었던 유치인 신체검사 조항을 법률에 규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장을 상대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 중 불심검문 규정이 강제절차가 아니라 임의절차임을 명백히 하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일부 언론은 현행 법률에 규정된 불심검문에 대한 거부권이 개정안에서 삭제됨으로써 경찰관이 검문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검문하거나 소지품을 검사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경찰의 불심검문은 ‘양날의 칼’이다. 범죄 예방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칼이 될 수 있다. 또 오남용으로 말미암아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칼이 될 수 있다. 적용과 실시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개정안을 자세히 보면 본인의 의사에 반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고, 형사소송 절차에 따르지 않고는 구속당하지 않는다는 현행 조항을 그대로 두고 있다. 인권위 의견과 같이 다듬어지지 않은 문구 때문에 강제절차로 오해될 수 있는 부분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면서 임의절차임을 좀 더 명확히 명시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개정안은 현행 법률과 비교해 경찰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거나 국민의 인권을 위협할 만한 내용이 없다. 그럼에도 일부에서 우려하는 이유는 명백한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경찰이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권한의 오남용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경찰도 이런 점은 깊이 반성하고 법의 취지에 맞는 집행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해야 한다.

개정안은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에서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두부처럼 부드럽기만을 기대하면 공권력의 무력화를 초래해 결국 국민과 사회의 치안 확보를 위한 경찰 활동의 큰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부 교수 한국테러학회장

[반대]경찰 직무 편의성에만 치중

마구잡이 검문 방지책 없어 인권침해 가능성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은 불심검문 시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신분증이 없는 경우에는 지문 채취나 연고자 연락의 방법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소지품 검사 및 차량 검색의 범위도 확대된다.

현재는 불심검문 시 흉기 소지 여부에 대해서만 조사할 수 있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위험한 물건까지로 소지품 조사의 범위가 확대된다. 게다가 차량과 선박을 정지시켜 질문하고 무기 흉기 마약 등 공공의 안전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물건의 적재 여부를 조사할 수 있도록 차량 수색의 근거 규정도 새로이 마련된다.

개정안의 불심검문 규정은 경찰 권한의 강화 및 경찰 직무의 편의성을 도모하는 데에만 치중했지, 그로 인한 법치주의의 훼손과 인권 침해의 문제에는 너무나도 둔감해서 마치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 것 같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경찰이 불심검문 시 시민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근거는 없다. 신분증 확인은 용건이나 이름을 묻는 정도의 불심검문보다 기본권 침해 강도가 매우 크므로 피의자로서 범죄 혐의가 있는 경우에 한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도록 주민등록법에 규정했다. 범죄 혐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 불심검문 절차에서 시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것은 경찰권의 과잉행사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신원 확인 요구를 거부할 권리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점도 문제이다. 예방적 경찰활동으로서 불심검문을 인정해도 대상자에게 답변 의무를 부과하는 식으로 진술을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 신분증 제시 요구도 마찬가지이다. 신분증의 제시는 성명이나 연령, 주소에 대한 진술에 갈음하는 것으로 진술거부권의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소지품 검사나 차량 검색의 규정은 영장주의원칙의 훼손 및 인권 침해의 소지가 매우 크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소지품 조사)라든가 범인 검거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차량 검색)라는 포괄적인 요건하에서 경찰은 아무런 제약 없이 시민의 소지품이나 차량 내부를 조사할 수 있다.

이런 요건은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무차별적인 검색이 허용될 위험이 매우 크다. 이뿐만 아니라 소지품 검사나 차량 검색에 대한 시민의 거부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강제적 수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영장 없는 압수수색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1970, 80년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경찰이 강압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불심검문권한을 남용했던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위와 같은 법 개정안은 당장 철회해야 마땅하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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