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독일어로 한국소설 번역하는 하이디 강 교수

입력 2004-08-31 18:43수정 2009-10-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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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한국문학작품의 독일어 번역에 힘을 쏟고 있는 하이디 강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 문학계가 너무 영어 번역에만 관심을 쏟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편소설 한 권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데에는 대략 2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전영한기자
《한 독일 여성이 있다. 스물한살 꽃다운 나이에 프랑스에서 한국인 유학생과 만나 결혼까지 골인했다. 남편 하나 믿고 한국으로 건너와 신접살림을 차렸건만 즐거운 신혼시절도 잠깐. 대한민국 최대의 간첩사건에 연루돼 남편과 생이별하고 쫓겨나듯 독일로 돌아갔다. 강산이 한번 바뀐 뒤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남편과 재회하고 독일어 교수로 성공했다. 독일에 한국문화를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한국 문학작품들을 번역해 독일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지금까지 수십편의 한국 장·단편 소설들이 그의 손을 거쳐 독일 독자들에게 소개됐다. 강의와 번역으로 바쁜 와중에 그는 장애인 딸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냈다.》

하이디 강(Heidi Kang·65)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곡절 많은 삶을 산 사람답지 않게 그의 얼굴에는 소녀 같은 수줍은 미소가 가득하다. 8월 말 정년퇴임을 며칠 앞둔 그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창동 소설집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독일어로 번역 중이던 그는 “아직 이해 못하는 한글 단어가 많다. 30년 넘게 살았건만 한국 사람이 되려면 멀었다”면서 웃는다. 내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출품도서의 공식 번역자로 선정된 그는 “번역이 밀려서 정년퇴임에 대해 우울해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한국 작품을 번역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문학적 완성도에 비해 외국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홍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일본과 중국의 문학작품이 노벨상을 타고 외국에서 많이 읽히는 것은 치밀한 해외 홍보 전략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한국 작품은 어렵게 외국어로 번역된다 해도 외국의 서점 선반에 먼지만 수북하게 쌓인 채 꽂혀 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가 주는 ‘한국문학 번역상’을 수상한 그는 현대소설 번역을 좋아한다. 사회성이 강한 ‘역사소설’은 가급적 피한다. 현대소설은 동시대를 사는 외국인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갈등과 이념적 대립을 그린 역사소설은 어두운 한국정치사에 휩쓸렸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한번 들추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1967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동백림사건. 그는 남편 강빈구(姜濱口) 전 서울대 상대 교수와 함께 이 사건의 가담자로 체포돼 중앙정보부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왜 끌려가는지도 몰랐습니다. ‘간첩죄’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을 듣고 한동안 멍했습니다.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국제스파이’가 바로 나라니….”

증거 불충분과 외국인이라는 신분 덕분에 감옥행을 면할 수 있었던 그는 한국을 떠나라는 중정의 압력으로 독일로 갔다가 9년 만에 돌아왔다. 그의 남편은 끝내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개인사업을 하다가 최근 은퇴했다. “1990년대 초부터 한국사회가 사상적으로 점차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는 그는 최근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재평가 조사대상에 동백림사건이 포함된 것에 대해 “명예회복의 기회”라며 기뻐했다.

3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소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가에는 곧바로 물기가 맺힌다. 그의 첫째딸은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한국에서 꿋꿋하게 딸을 키우려고 했지만 “장애인은 결혼도 못 한다”, “장애인을 밖에 데리고 나오지 말라”는 얘기들이 비수가 돼 그의 가슴에 꽂혔다.

결국 딸을 독일로 보내고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딸을 키웠다. 그의 딸은 독일에서 재활치료를 받아 뇌성마비를 상당부분 극복하고 음악교사를 하며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제 독일 소시지보다 김치 맛에 익숙해진 그는 “퇴임해 시간 여유가 생기게 됐으니 무엇보다 한국음식 만들기를 제대로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제사음식 말고는 잘 만드는 한국음식이 별로 없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제사음식만큼은 잘한다?

“맏며느리니까 제사 준비는 제 몫이죠.” ‘한국 아줌마’의 대답이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하이디 강 교수는▼

△1939년 독일 빌레펠트 출생

△1962년 독일 뮌헨대 영문학 석사

△1963년 독일에서 강빈구 전 서울대 교수와 결혼 후 한국행

△1964∼1967년 서울대 강사

△1967년 동백림사건 연루 조사

△1968∼1976년 독일로 돌아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1977∼1983년 한국에 돌아와 서울독일인학교 교장

△1984∼2004년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및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1988년 이후 한국 소설 독일어 번역집 6권 출간

△2003년 ‘한국문학 번역상’ 수상

△남편과의 사이에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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