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韓-네덜란드 사전 만드는 경 데이크만 교수

  • 입력 2004년 8월 17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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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관련자료들을 쌓아놓고 ‘한-네덜란드’ 사전 발간 작업에 푹 빠져 있는 경 데이크만. 그는 “같은 핏줄을 나눈 한국에서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지만 양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네덜란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크다”고 말했다.-박주일기자
여러 가지 관련자료들을 쌓아놓고 ‘한-네덜란드’ 사전 발간 작업에 푹 빠져 있는 경 데이크만. 그는 “같은 핏줄을 나눈 한국에서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지만 양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네덜란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크다”고 말했다.-박주일기자
“한국 네덜란드, 둘 다 저에게 소중한 조국입니다. 두 나라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한국 입양아 출신 네덜란드인 경 데이크만(Kyung Dijkman·32)은 두 조국을 이어주는 ‘끈’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 끈은 바로 ‘한-네덜란드어’ 사전. 네덜란드-한국어 사전은 1996년 나왔지만 한-네덜란드어 사전 편찬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과 전임강사로 재직 중인 그에게선 ‘입양아’라는 말에서 배어나오는 어두운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 역시 대다수 입양아가 겪는 정체성 문제로 한때 방황했지만 지금은 이런 고민을 털고 두 조국을 잇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한-네덜란드어 사전의 필요성을 생각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 네덜란드에서 서점에 다니다가 주요 아시아 국가 중 자국 언어를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사전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그는 “히딩크 열풍(2002년), 하멜 표착 350주년(2003년) 등으로 네덜란드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국학과를 개설한 네덜란드 대학도 늘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한국 소개 자료라고 할 수 있는 한-네덜란드어 사전조차 없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언어연구재단의 후원으로 만들어지는 한-네덜란드어 사전은 2006년 초 네덜란드와 한국에서 동시 발간될 예정. 약 2000쪽 분량의 사전을 만드느라 그는 이 여름을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료와 씨름하며 보내고 있다.

네 살 때 입양된 그에게 ‘모국어’는 네덜란드어이지만 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전공한 덕분에 한국어에 꽤 익숙한 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편찬 작업은 쉽지 않다. 네덜란드에는 없는 한글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제사·민속의식 관련 용어, 의성어, 의태어 등은 단어 1개를 번역하는 데 2, 3일이 걸릴 정도로 지난한 작업이다.

제대로 된 한-네덜란드 사전은 네덜란드에 한국을 널리 알릴 뿐 아니라 4000여명에 달하는 네덜란드의 한인 입양아들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주는 계기가 될 것이란 ‘믿음’이 그에게 힘을 주고 있다. 대학시절 입양아 친목단체인 ‘아리랑’에서 카운슬러로 활동했던 그는 네덜란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인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다. 자살한 입양아들도 있었다. 그는 “입양 청소년들의 방황을 전부 입양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네덜란드 양부모와의 갈등, 한국 친부모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등이 뒤섞여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도 10대 때는 양부모 속을 어지간히 썩였지만, 불임으로 인해 입양을 택한 그의 양부모는 어릴 때부터 그를 입양인 모임에 데려가고, 입양아 관련 책을 사주는 등 아이의 입장에서 최대한 배려해 성장기를 무난하게 넘기도록 이끌어줬다. 양부모는 그의 네덜란드 이름도 한국 이름 ‘권은경’을 살려서 지어줬다.

1990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는 양부모와 함께 한국을 다시 찾았다. 외할머니 외삼촌 등 친척들을 찾았지만 부모님은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입양되기도 전인 두 살 때 이미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아버지와는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국의 가족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으련만 그는 오히려 “20여년 동안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았을 그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8월부터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주말이면 외할머니와 만나 밀린 얘기를 나누는 것이 일과가 됐다. 요즘에는 이달 하순 한국을 방문하는 네덜란드 양부모와 외할머니를 함께 모시고 한국 곳곳으로 여행을 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사전 발간 작업이 끝나면 어디서 살 계획인지 물어봤다. “한국과 네덜란드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반반입니다. 그러나 어디에 머물든 양국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두 나라는 바로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또 미래이니까요.”

▼경 데이크만 교수는▼

△1972년 경기 성남시 출생

△1976년 네덜란드 입양(양부모의 1남1녀 중 1녀. 오빠 역시 한인 입양아임)

△1990년 입양 후 처음 한국 방문. 외할머니, 외삼촌 등과 상봉

△1991∼1998년 네덜란드 라이덴대 한국학과 학사 및 석사

△1994∼1995년 한국어 어학연수차 한국 생활

△2001∼2003년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근무

△2003년 8월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과 전임강사(현)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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