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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세계화의 역류… 저성장-양극화에 지쳐 ‘각자도생’ 시대로

입력 2019-12-23 03:00업데이트 2019-12-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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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혼돈의 2019]
<9>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
1980년대 후반 동유럽권 붕괴 이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전까지 약 20년은 흔히 세계화의 시대로 불린다. 상품, 노동,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각국 경제 통합으로 전 세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연결됐다.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등의 저서에서 세계화의 장점을 칭송했고 세계적인 권위자로 불렸다.

금융위기 이후 소득불평등, 저성장, 보호무역, 자국우선주의 등이 고착화하면서 각국의 교역, 투자, 인력, 정보 교류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세계화 후퇴, 즉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이 나타난 것이다. ‘느린(Slow)’과 ‘세계화(Globalization)’의 합성어로 한때 세계 경제성장과 각국 통합을 촉진했던 세계화 시대와 달리 자본과 노동의 이동 제약, 금융 및 기업 규제 강화, 국제 공조 균열이 두드러지는 현상을 말한다.

네덜란드 경제학자 아지즈 바카스가 명명한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올해 초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그 부작용을 우려한 특집 기사를 내보내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각국의 경제, 사회 교류 범위가 극소수 이웃 나라로 좁혀지는 ‘블록화’ 양상이 심화하면서 성장 둔화가 가속화하고 난민, 기후변화, 탈세, 사이버 범죄 등 국제 공조가 불가피한 문제가 방치될 것으로 우려했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대립하는 경쟁 국가나 기업에 관세를 부과하고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게 유리할 수 있지만 보복 관세 등으로 상품 가격이 상승하고 교역이 줄면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손해라는 점을 지적했다. 슬로벌라이제이션으로 교역 감소와 저성장이 나타나면 불평등을 해결하는 일이 더 어려워지고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를 앞세운 세력이 곳곳에서 발호한다는 의미다.

세계화의 동력과 지지 세력이 크게 줄어들면 브렉시트 등 세계화 후퇴가 아예 노골적인 반(反)세계화 추세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세계화 후퇴를 야기한 저성장과 불평등이 반세계화 세력에게 일종의 명분을 제공해 슬로벌라이제이션을 더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0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금융위기 이후 11년 최저치인 2.9%로 제시했다. 이 와중에 세계 소득불평등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올해 세계 성인 인구 중 상위 1%가 전체의 절반(45%)에 가까운 부를 독점하고 있다. 영국 비영리단체 옥스팜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세계 억만장자 380명의 부를 합쳐야 세계 하위 50%의 부와 동일했지만 2017년에는 상위 42명의 부자가 하위 50%의 부와 같았다”고 지적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최근 각국에서 나타나는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 폭등 및 인구 집중화 현상도 슬로벌라이제이션과 무관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저금리와 저성장, 고용 부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나마 일자리와 기회가 있는 수도권으로 몰려 각국 주요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는 의미다.

17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웨덴 스톡홀름, 스페인 마드리드 등 유럽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최소 30% 상승했다.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 아일랜드 등에서는 평균 40% 넘게 올랐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독일 뮌헨과 프랑스 파리 부동산 시장이 이미 거품에 진입했거나 거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년 전 세계화는 곧 선진화를 의미했지만 금융위기로 이 신화가 산산조각 난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사조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세계화에 대한 반감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진단했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조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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