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政 산유국’ 사우디-카타르 다툼속… 중동 패권 노리는 이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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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단교사태 3개월 파장

‘사우디아라비아의 악수(惡手)가 지역 라이벌인 이란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아랍권 주요 국가들이 주도한 ‘카타르 단교’가 5일로 발생(6월 5일) 3개월을 맞이한 가운데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가 이란이라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포스트(WP) 등 해외 언론들은 “사우디가 주도한 카타르 단교 사태가 실패하고 있고, 이란에 새로운 전략적 기회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이란에 유리한 방향으로 지역 국가들 간의 관계가 정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직간접으로 이번 사태의 ‘약자’이며 종파도 다른 카타르를 지원하고 나서면서 지역 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 ‘걸프협력회의(GCC)’의 균열

이란에는 자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라비아반도 6개 왕정 산유 국가(사우디, 카타르, 쿠웨이트, UAE, 오만, 바레인)가 결성한 GCC가 흔들리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다.

1981년 사우디가 주도했던 모임인 GCC는 지역 라이벌인 이란과 이라크를 견제하는 게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였다. 당시 이란은 호메이니가 주도한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졌고,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정부가 세속주의 공화정을 추구해 왕정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왕권 유지와 이란·이라크의 영향력 억제란 공통 목표를 토대로 구축된 GCC 회원국들은 그동안 서로를 ‘형제국’으로 부르며 그 나름대로 탄탄한 결속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번 단교 사태 과정에서 GCC 회원국 간에는 분명한 견해차와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사우디-UAE-바레인’(단교 주도국), ‘쿠웨이트와 오만’(중립국), ‘카타르’(단교 대상국) 식으로 사실상 3개 그룹으로 나뉜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GCC는 중동에서 가장 응집력이 높고 동질적인 정치결사체고, 이 안에서도 사우디와 카타르는 부족 전통이나 이슬람 사상적으로 가장 유사했다”며 “카타르 단교 사태와 이로 인한 GCC의 분열은 국가 이익이 부족과 종파로 인한 정치적 결속력보다 훨씬 우세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미 상대적으로 시아파 인구 비율이 높은 쿠웨이트와 수니파, 시아파와는 또 다른 ‘이바디파’를 믿는 오만도 이번 기회에 사우디 등과 적당히 거리를 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오만은 카타르에 항만까지 제공하는 등 이미 사우디와 거리 두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오만은 전통적으로 이란과의 관계도 원만했기 때문에 더욱 분명한 친이란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 카타르 내 ‘친이란’ 인식 구축

이란은 형제국들의 단교로 어려움에 직면한 카타르를 직접 도우며 ‘해결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중동 지역의 리더 국가 이미지를 확실히 만들고 있다.

이란은 단교 사태 초기부터 ‘이란의 하늘, 땅, 바다는 항상 카타르에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발표했고, 적극적으로 식량과 생필품을 카타르에 제공했다. 또 사우디 등이 시대착오적인 외교 조치를 내렸다고 비판해왔다.

특히 이란발 항공기를 통해 들어오는 각종 생필품과 식료품을 사용하는 카타르 국민 사이에서 이란의 이미지는 계속 좋아지고 있다. 카타르 안팎에선 “어려울 때 확실히 도와준 이란과는 심리적으로 훨씬 더 가까워졌고, 단교 선언 국가들과는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예전처럼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실제로 카타르는 지난달 24일 이란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로 했다. 카타르는 지난해 1월 사우디가 자국 내 시아파 고위 성직자를 대거 처형하면서 이란과 갈등을 빚으며 단교를 결정할 때 동참해 자국 대사를 소환했다. 그러나 20개월 만에 당시 이란과의 단교 내지 외교 관계 격하 조치에 참여했던 주요 수니파 국가 중 유일하게 관계 정상화에 나섰다.

페르시아만에 있는 세계 최대 가스 매장 유전인 노스돔(카타르령)과 사우스파(이란령)는 서로 맞닿아 있다. 카타르와 이란이 이번 사태가 아니어도 외교·경제적으로 가깝게 지낼 필요성을 서로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 중동의 ‘리더 국가’ 이미지 강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수니파 성향이 강했던 카타르를 적극 돕는 ‘시아파 맹주’ 이란의 모습은 시아파 국가는 물론이고 전체 이슬람권에서 이란의 이미지와 영향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 확산 억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키운 중동 패권 국가란 인식을 카타르 단교 사태를 통해 또다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도 최근 “이란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경제·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정도로 지역 내 영향력이 크다”고 분석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도 “이란은 지속적으로 카타르를 지원하며 지역 내 영향력을 유지·확대해 나가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세형 turtle@donga.com·위은지 기자
#카타르 단교사태#사우디아라비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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