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글로벌 인사이더]미국에서 만난 일본과 중국 기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3일 14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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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반 미국 워싱턴 특파원 시절 일본과 중국 기자들을 여럿 만났다. 이들을 통해 양국의 외교적 특징을 비교할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국무부 취재 때 옆자리에 미국 여기자를 만났다. "어느 매체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일본 교토통신 기자"라고 했다. 의아해 하는 필자에게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에도 일본 매체에서 일하는 미국 기자들을 많이 만났다. 일본 매체는 미국에서 자란 일본인이나 일본어에 능통한 미국인을 많이 고용한다. 언어적 장벽을 줄이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를 상대로 취재할 때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면 무시당하거나 다른 기자들로부터 눈총을 받기 쉽다는 것을 일본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상황에서나 얄미울 정도로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일본인의 습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일본 기자들도 국가적인 빅 이슈 앞에서는 눈총을 받는 것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독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가 그랬다. 일본 기자들은 국무부 브리핑룸에 단체로 등장해 미국 관리로부터 일본에 유리한 대답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질문 공세를 펼쳤다. 비슷한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면서 브리핑룸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그럼에도 일본 기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미국 측은 "한일 양국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는 중립적 태도였지만 일본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계속되자 나중에는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은 미국을 '최고 파트너'로 인식하며 적극 대응한다. 워싱턴 주재 일본 대사관은 미국 관리들을 초청해 자주 행사를 연다. 심각한 외교적 모임이나 세미나가 아니다. 시 낭송회, 다도(茶道) 축제 등 일본의 전통을 보여주는 행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가장 먼저 미국에 달려가 회담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꾸준히 일본을 알리기 위한 외교 노력을 펼쳤기 때문이다.

일본이 적극 대응파라면 중국은 전략적 무(無)대응파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 국무부 건물 7층에는 언론 브리핑룸이 있다. 기자들이 미국 외교에 대해 듣고 질문을 하는 자리다.

매일 정오경 열리는 브리핑은 지역별 순서대로 진행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곳곳의 이슈에 대한 중구남방식의 질문이 이어져 브리핑이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미국의 최대 관심 지역인 중동 및 이스라엘이 가장 앞서 다뤄지고 러시아, 유럽, 아시아가 뒤를 잇는다.

여기서 예외 대접을 받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순서대로라면 중국은 브리핑 후반부에서 다뤄져야 하지만 주요2개국(G2) 위상을 반영하듯 중국 관련 이슈는 브리핑 처음이나 초반에 다뤄진다. 미중 간 정상회담과 무역갈등, 사이버분쟁, 영유권 문제 등 중국과 관련된 미국의 외교 문제는 많고도 많다.

그런데 중국 기자들은 브리핑에 오지 않는다. 미국에 파견된 중국 기자가 1000여명을 넘고 중국 관련 이슈들이 넘쳐나지만 중국 기자는 브리핑룸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대개 특정 국가에 관련된 문제는 그 나라 출신 기자들이 많이 질문을 하는데 중국 문제는 다른 나라 기자들이 질문을 한다.

국무부 공보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중국 기자들에게 전할 내용이 있는데 중국 기자들을 한 명도 모르니 아는 기자가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브리핑에도 오지 않고 국무부에 취재나 인터뷰 요청하는 중국 기자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언론관계가 얼마나 단절됐는지 알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중국 기자들이 미 국무부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브리핑에서는 자국의 입장을 알리고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경쟁관계인 미국의 입장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자들은 어떤가. 필자 생각으로는 워싱턴 국무부 브리핑룸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의 외교적 스타일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있으며, 일본 쪽에 더 가깝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미일 3국의 대미(對美) 외교관계에 상당한 변화가 예고된다. 언제 어디서나 외교적 민첩성을 보이는 일본, 미국과의 '하드 바겐(유리한 조건의 협상)'에 능한 중국. 양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한국은 능수능란한 외교력도, 내세울만한 외교적 스타일도 없다. 북한 핵문제, 주한미군 비용 협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프레임 속에서만 한국을 바라보는 트럼프 정부에게 한국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대미(對美) 관계 구축 작업은 국내 우선순위에서 멀어진 듯 하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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