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보육 현장을 가다]<4> 보육이 곧 기업브랜드… 일본 시세이도

동아일보 입력 2012-05-04 03:00수정 2012-05-05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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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화장품 제조업체인 시세이도는 출산과 육아에 관한 한 ‘일본스럽지 않은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정부의 여성 사회진출 촉진정책 추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쉽지 않은 일본에서, 시세이도는 일찍이 선진 보육제도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취업정보회사들이 취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취직하고 싶은 기업’ 조사에서 시세이도가 항상 톱 5에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
“엄마와 안 떨어져요” 지난해 말 일본 도쿄의 시세이도 사내 어린이집인 캥거룸 앞에서 핼러윈 파티 복장을 한 직원 자녀와 부모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캥거룸은 캥거루와 공간을 합쳐 만든 조어로 시세이도의 사내 어린이집이다. 시세이도 제공
20년에 걸쳐 시세이도가 도입한 다양한 보육지원 제도는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4.2년으로 남성(19.6년)과 큰 차이가 났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남성(18.4년)과 여성(17.5년)이 거의 비슷해졌다. 사원들은 회사의 다양한 보육지원제도에 업무 집중과 높은 생산성으로 화답했다.

○ 정부 정책보다 앞선 육아지원


시세이도가 육아지원제도의 핵심인 육아휴직제를 도입한 것은 1990년이다. 일본 정부가 대기업에 육아휴직제를 의무화한 1992년보다 2년 빠른 조치였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는 여성이 임신이나 출산을 하면 직장을 관두는 게 보통이었다. 아이를 다 키운 엄마들이 다시 일하려 해도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파트타임 같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시세이도는 자녀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통산 5년 동안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육아휴직제 도입 이듬해인 1991년에는 육아를 위해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육아시간제를 도입했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하루 최대 2시간 단축근무를 허용해 출퇴근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우에노 도모코(上野朋子) 씨는 “육아휴직 5년을 다 쓰고 지금은 하루 45분씩 단축근무를 하고 있다”며 “이런 회사의 지원이 없었다면 출산을 포기했거나 이미 회사를 그만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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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시세이도에서 출산했거나 아이를 키우는 여성사원의 재직 비율은 2010년 현재 90%를 넘는다.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여성이 10명 중 1명에 그치는 셈이다.

○ 진화하는 시세이도의 보육지원


시세이도의 전통적 보육지원 제도는 출산과 육아기 여성사원의 업무부담을 줄여주는 ‘면제형’이었다. 그러나 이는 남녀 역(逆)성차별, 불공평한 업무부담이라는 불만을 낳았다. 더 큰 문제는 여성을 배려하기 위한 지원이 오히려 여성의 업무능력을 퇴화시켰다는 점이다.

자연히 시세이도의 보육지원은 2000년대 들어 직장과 가사(家事) ‘공존형’으로 진화했다. 2003년에는 사내 어린이집인 ‘캥거룸’과 ‘카페테리아 플랜’을 도입했다.

사내 어린이집은 지금은 일본에서도 운영하는 기업이 여럿 있지만 당시만 해도 혁신적이었다. 캥거룸은 새끼를 품에 넣고 다니는 캥거루와 보육공간이라는 룸(room)을 합쳐 만든 조어다. 일본은 취학 전 아동을 돌봐주는 어린이집이 많지 않은 데다 1년 단위로 원생을 모집하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면 꼼짝없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보모를 구해야 하지만 캥거룸 덕에 시세이도 직원들은 언제든지 안심하고 자녀를 사내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게 됐다.

어린이집 비용이나 보모 고용비 등 육아비용을 일부 보조해주는 카페테리아 플랜도 실질적인 육아지원책으로 꼽힌다. 근무연한과 직급에 따라 연간 최대 10만 엔까지 보조해 주는데 다양한 육아보조 메뉴 중 자신의 처지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시세이도는 육아로 일찍 퇴근하는 여성사원을 대신하기 위해 비정규직 사원인 ‘캥거루 스태프’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주로 매장에서 일하는 시세이도의 피부미용 상담직원이나 판매사원을 위한 것이다. 이들이 조기 퇴근하면 퇴근시간에 몰리는 손님을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 시세이도 판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캥거루 스태프는 총 733명에 이른다.

시세이도의 홍보담당 나가이 쇼타로(永井正太郞) 씨는 “자신이 쉬면 동료들의 업무부담이 커진다는 점 때문에 육아휴직이나 육아시간제 도입 초기에는 이용률이 저조했지만 캥거루 스태프 덕에 지금은 모든 보육지원 제도가 실질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 남성의 육아 참여를 지원하라

시세이도의 보육지원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육아 및 가사 참여를 적극 권장하는 게 특징이다. 2005년 도입한 남성 단기육아휴직제가 대표적이다. 육아휴직제는 원칙적으로 남성도 사용할 수 있지만 실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시세이도는 유명무실한 남성 육아휴직 대신 자녀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연간 최대 2주씩 유급 휴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시세이도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단기육아휴가를 얻은 남성은 전체 남자직원의 15.7%. 출산 육아기의 젊은 남성만 계산하면 실제 이용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일본에서는 최근 육아를 적극적으로 돕는 남성을 뜻하는 ‘이쿠맨’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육아를 뜻하는 일본어 이쿠(育)와 영어로 남성(Man)을 합쳐 만든 것이다. 시세이도는 직장 내 이쿠맨을 지원하기 위해 2008년부터 ‘남성의 육아참가촉진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도록 해 어린 자녀가 있다는 것을 동료들에게 널리 알리도록 한 것이다. 또 매년 한 차례 자녀를 회사로 초대해 상사나 동료에게 인사시키는 제도도 도입했다.

시세이도는 사원들이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10년부터 오후 10시면 본사 사무실 불을 강제로 끄고 있다. 시행 1년 만인 지난해부터는 의무 소등시간을 오후 8시로 앞당겼다.
▼ “회사형 인간보다 가족형 사원이 생산성에 도움” ▼
■ 이와타 인사담당 이사 인터뷰


“21세기는 다양한 가치를 인정해야 의미 있는 발전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시세이도가 여성들의 육아지원을 위해 솔선수범해온 것도 이런 다문화 풍토를 육성하기 위한 겁니다.”

시세이도에서 인사와 육아지원 정책을 맡고 있는 이와타 기미에(巖田喜美枝·사진) 이사는 회사의 선진 육아지원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소비자의 취향이 점점 다양해짐에 따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상품 개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이자 1차 소비자인 사원들의 사고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후생성 관료 출신인 이와타 이사는 1990년대 초 시세이도로 자리를 옮겨 3월 말까지 대표이사 부사장을 지냈다.

시세이도는 일본 고도 경제성장기인 1970, 80년대까지만 해도 여느 일본 회사처럼 사원운동회나 사원여행 이벤트가 많았다. 가족도 함께 참가할 수 있지만 팀워크와 로열티를 높이자는 취지로 ‘사원’에 포커스를 맞춘 행사였다.


하지만 시세이도는 1990년부터 육아지원 정책을 추진하면서 인사정책을 가족 중심으로 전환했다. 단일 목표를 위해 모든 사원이 조직적으로 동원되는 회사형 인간보다 사원의 다양성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이와타 이사는 “일본 기업의 전통적인 모노컬처(단일문화)가 얼핏 강해 보일지 몰라도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회사가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섬세하면서도 유연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게 시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육아지원제도가 있어도 실제로 이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지원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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