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그후 1년]<5> ‘리비아 재건 특수’ 잡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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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은 親카다피라 싫고, 美는 뜸만 들여… 한국이 도와달라”

재건 기다리는 폐허… 즐비한 한국차 전쟁이 끝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도시 전체가 아직도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한 미스라타 시내 모습. 미스라타 시만 해도 건물과 사회간접자본시설 재건 비용으로 1조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과도정부는 이 같은 재건사업을 비롯해 향후 5년간 총 3000억 달러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추산했다(위), 리비아 트리폴리 미스라타 등 대도시를 지나는 차량의 대다수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다. 미스라타 중고차 대리점에 즐비한 한국 차. 미스라타=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재건 기다리는 폐허… 즐비한 한국차 전쟁이 끝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도시 전체가 아직도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한 미스라타 시내 모습. 미스라타 시만 해도 건물과 사회간접자본시설 재건 비용으로 1조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과도정부는 이 같은 재건사업을 비롯해 향후 5년간 총 3000억 달러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추산했다(위), 리비아 트리폴리 미스라타 등 대도시를 지나는 차량의 대다수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다. 미스라타 중고차 대리점에 즐비한 한국 차. 미스라타=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달 초 트리폴리 국제무역전시장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1992년 이후 매년 열리다 지난해 내전으로 열리지 못했던 무역박람회가 올해 다시 열린 것. 올해 대회는 200여개의 국내외 기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였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 압두르라힘 킵 총리는 인사말에서 “세계가 ‘뉴 리비아’ 건설을 지켜보고 있다. 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카다피 사후 리비아가 개방정책을 펼 것임을 분명히 했다. NTC는 지난해 10월 통관 수수료(10%)를 아예 없애고 자동차 트럭 화장품 담배를 뺀 모든 상품의 수입 관세를 5% 이하로 내렸다. 의약품 원자재 식료품은 무관세다.

전쟁이 끝난 리비아는 현재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초대형 시장이다. 무스타파 압둘잘릴 NTC 위원장은 “향후 5년간 3000억 달러(약 342조 원)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주택 공장 다리 건설 등 인프라 시장이 1200억 달러, 자동차 가전제품 등 각종 상품 수입 시장이 1500억 달러, 훈련기 레이더 등 방산시장이 300억 달러로 추산된다. NTC는 “현재 동결된 해외자산 1700억 달러와 연간 400억∼500억 달러의 석유수출액을 감안할 때 리비아 정부가 현실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수치”라고 밝혔다.

리비아 재건속도는 빠르다. 석유생산은 1분기 130만 배럴, 2분기 150만 배럴(추정)이 가능해 전전(戰前) 수준으로의 회복이 예상된다. 오일 및 가스 생산, 수출 정상화가 이뤄질 경우 올 경제성장률은 21.9%나 될 것으로 전망된다. 건국(1951년) 이후 매년 흑자였다가 지난해 처음 적자였던 경상수지도 올해 153억 달러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지 기업인들은 “석유도 석유지만 외국인들을 대하는 분위기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트리폴리에서 만난 한 한국 주재원은 “지난 42년간 카다피 정권에서 공무원들을 자유롭게 만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정부부처에는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대사관 직원까지 출입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 쪽에서 먼저 만나겠다는 공문이 올 정도”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잘살려는 의지’도 강해졌다. 이곳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나라가 바로 두바이. 미스라타에서 만난 기업인 하이삼 씨는 “1979년 목축국가였던 두바이가 돈을 빌려달라고 사정했던 곳이 바로 리비아다. 두바이는 지금 선진국이 됐지만 우리는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며 “리비아는 그동안 자원이 없어서 문제였던 게 아니라 자원을 특정 계층에게만 배분한 게 문제였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배분이 이뤄지면 성장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자신했다. 현대엠코 트리폴리지사 이성재 이사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트리폴리에서 매일 교전이 벌어져 이 나라가 언제 안정이 될까 했는데 놀랄 만큼 빨리 안정을 찾고 있다”며 “전망은 대단히 좋다”고 했다.

현재 리비아 재건시장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을 통해 내전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서방이 독점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현지 관계자들 말을 들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조대식 주리비아 한국대사는 “전쟁 직후 프랑스 미국에서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다녀갔지만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하나도 없다. 서양인들 특유의 신중함으로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도 전쟁 직전에 미스라타에 도요타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가 전쟁으로 파괴되자 모든 프로젝트를 정지시킨 상태”라고 전했다. 중국의 경우에는 내전 막바지까지 카다피 군에 무기를 제공하고 정치적으로 카다피를 지지해온 사실이 퍼져 일반인들에게 혐중(嫌中) 인식이 팽배하다. 조 대사는 “향후 1년이 고비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사람들 특유의 역동성과 진취성을 발휘해 미리 리비아에 깃발을 꽂을 수 있다면 현재의 격동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본다”며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크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트리폴리 시내 차량 중 대다수가 현대, 기아차다. 업무차 트리폴리에 왔다는 한 중고차수업업체 사장은 “이 나라는 기름값이 워낙 싸 대부분 차를 가지고 다니는데 중산층이 없다 보니 중고차를 선호한다”며 “현대차는 가격 대비 만족도가 가장 커 외국차 중에 점유율이 가장 높다. 전쟁 전에는 1년에 5만 대 이상 중고차가 팔렸고 전쟁이 끝난 지금은 한 달에 1만 대 이상 주문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기자가 트리폴리 미스라타에서 만난 고위 관료들과 시민들에게 한국을 아느냐고 물으면 “동가이”(동아건설) “현다이”(현대) 소리가 바로 튀어나왔다. 그동안 중국 터키와 함께 리비아 건설시장을 3등분해 약 30%를 점유해온 국내 건설회사들의 공이 크다. 1984년과 88년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는 에살레 경제개발 차관은 “한국 사람들이 짓는 건물은 20년이 지나도 끄떡없다. 한국인들은 매우 성실하며 일단 뭐든 맡기면 잘해낸다는 믿음이 리비아인들에게 퍼져 있다”고 전했다.

현재 리비아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뭘까. 단연 의료 분야가 꼽힌다. 부상자 5만 명, 실종자 3만 명이 남긴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막대한 의료지원이 필요한데 상황은 열악하다. 의사 출신인 식약청장 아판 씨는 “의사 월급이 200∼300디나르(25만∼38만 원)이다 보니 모두 튀니지 이집트로 이민을 갔다. 의사가 없어 내전 부상자들도 터키 이집트 요르단 영국 그리스 미국 스웨덴으로 보내져 치료받고 있다”고 전했다. 실종자 발굴과 DNA 신원 확인 분야에 대한 수요도 크다. 각종 인프라 건설은 물론이고 전자여권, 출입국 통관시스템에서부터 주민등록사업, 전자정부 사업, 정보기술(IT) 수요도 클 것으로 보였다. 영어교육 수요도 만만치 않다. 교사 하지즈 씨는 “영어를 배우면 서방과 내통한다며 카다피 시절 영어교육을 하지 않아 젊은이들이 영어문맹”이라며 “리비아 젊은이들의 영어에 대한 갈망이 크다”고 전했다.

불안한 치안상황은 아직 여전하지만 실제 가본 리비아는 밖에서 보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현재 리비아에서 일고 있는 큰 변화의 물결은 또 다른 기회로 보였다. 조 대사는 “리비아는 한국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의 건설기업들이 30년간 수주한 물량이 무려 400억 달러(약 45조 원)”라며 “오랜 독재와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 나라 건설을 시작하는 이 나라 국민에게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과 경제 성장 경험을 토대로 위로하고 감싸주는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이들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되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리폴리에서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아랍의 봄#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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