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그후 1년]<3> 카다피 관저 밥 알아지지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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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장갑차… 쓰레기 더미… ‘권력무상’ 독재자의 땅

독재 권력의 종말 무아마르 카다피의 관저였던 밥 알아지지아는 폐허 그 자체였다. 여의도 70% 면적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 위에는 참혹하게 무너지고 허물어진 건물 잔해가 가득했다. 카다피군의 것으로 보이는 장갑차가 잔해 위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트리폴리=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독재 권력의 종말 무아마르 카다피의 관저였던 밥 알아지지아는 폐허 그 자체였다. 여의도 70% 면적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 위에는 참혹하게 무너지고 허물어진 건물 잔해가 가득했다. 카다피군의 것으로 보이는 장갑차가 잔해 위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트리폴리=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무아마르 카다피의 관저였던 ‘밥 알아지지아’는 트리폴리 국제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생전 카다피가 비상사태 발생 시 바로 도망칠 수 있도록 공항과 연결되는 고속도로 바로 옆에 세웠다는 말이 생각났다. ‘요새’ ‘철옹성’으로 알려져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누구든지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올 때 오른쪽 도로에서 만날 수 있다.

관저는 세 겹의 콘크리트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벽은 모두 허물어졌다. 카다피는 1986년 미군 공습 때 무너진 성벽과 관내 건물 일부를 수리하지 않고 ‘저항의 집’이란 이름을 붙여 보존해 반미의 상징물로 활용했다. 이후 지하통로를 만들고 콘크리트 성벽을 3중으로 쌓아 공습에 대비했다. 지난해 3월과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집중공습을 받은 관저 내 건물들은 모두 흙더미로 변했다. 시민군이 8월 23일 트리폴리를 장악하면서 관저도 시민군 손에 들어갔다.

세 개의 성벽에 설치된 게이트를 지나 관저 안으로 들어선 순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건물들이 처참하게 무너진 관저 안은 한마디로 폐허 그 자체였다. 철근들은 한여름 엿가락처럼 휘어져 쓰레기더미와 뒤엉켜 있었고 욕조와 세면대 잔해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카다피 군(軍)의 것으로 추정되는 장갑차는 고철덩어리가 되어 흉물스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벽마다 수백 발의 총탄자국이 선명했다. 시민군과 시민들이 써 놓은 붉은색 페인트 낙서들도 어지러웠다. 출신 지역 이름과 전투 도중 숨진 동료 이름들을 써놓은 벽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들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화려한 문(밥 알아지지아)’이라는 이름의 자신만의 성을 쌓았던 독재자에 대한 민중의 증오가 얼마나 심했는지, 피를 뿌리며 이뤄야만 했던 그들의 민주화 열망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전해졌다.

관저의 총면적은 6km². 거주시설 지휘통제센터 막사 도서관 지하벙커 수십 개가 있던 이곳은 여의도의 70% 정도 되는 광대한 규모다. 관내만 걸어서 돌아보는 데 30분 넘게 걸렸다.

사방을 둘러봐도 인적이라곤 없는 절대침묵의 공간은 한낮인데도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관저를 막 나갈 즈음에야 철근을 주우러 온 아이 서너 명을 만났다. 지금 이곳은 그들에게 한낱 놀이터에 불과해 보였다. 무려 42년간 자신들의 부모 및 조부모 세대를 공포정치로 지배해온 독재자의 땅이었음을 그들은 알까.

트리폴리 허문명 기자
트리폴리 허문명 기자
나오는 길에서 만난 붉은색 건물은 지난해 민주화시위가 시작된 후 처음 카다피의 2월 연설이 녹화된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건재하다” “(시위대를) 다 쓸어버리겠다”고 외쳤던 바로 그 자리다. 그의 참혹한 종말처럼 폭삭 무너져 내린 연설대 앞에서 새삼 권력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관저를 빠져나오면 바로 트리폴리 지중해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고층건물들이 보인다. 전쟁이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방금 본 폐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카다피 관저를 제외하고는 트리폴리 시내의 모든 건물이 나토 공습으로부터 무사했다고 한다. 새삼 현대 첨단무기의 정확함이 실감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트리폴리 허문명 기자=angelhuh@donga.com
#아랍의#봄#카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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