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워 시프트]<4> 러시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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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민주화 시위에 휘청… 러 ‘제2 체제변화’ 진행중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 지난해 9월 24일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맞바꾸는 ‘권력 스와프’에 합의했을 때 서방세계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그게 러시아의 현실”이라며 ‘푸틴 체제의 부활’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이튿날 모스크바 시내에서 시위가 벌어졌지만 수백 명에 불과했다. 푸틴은 자신의 2012년 3월 대선 재출마에 대한 반대 분위기를 찻잔 속의 미풍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4일의 총선 부정 파문을 계기로 러시아 사회에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소련 붕괴 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규모 시위의 확산은 단지 푸틴이 다시 대통령이 되거나 총선 부정에 항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간 ‘관리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지속되어 온 통제체제에 대한 부정이다. 》
○ ‘푸틴 체제 자식들’의 반란

푸틴을 거부하는 계층은 푸틴 체제하에서 성장한 ‘신흥 도시 지식인과 중산층’이다. 그들이 한때 ‘차르’로 존경했던 푸틴을 무대에서 내려오라고 한다. 권력자와 일반 국민의 권력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야 말로 단순히 수평적인 정권 교체 이상의 ‘권력 이동(파워 시프트)’이 일어나고 있으며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이 보리스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1999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명되면서 러시아를 물려받을 당시 러시아는 옐친의 건강만큼이나 허약했다. 냉전시대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강대국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15개국으로 구성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은 해체되고 보유외환이 바닥났으며 실업률은 두 자릿수를 넘나들었다.

혜성처럼 나타난 푸틴은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을 외쳤으며 그의 근육질 몸매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쳤다. 그가 8년간 대통령과 4년간 총리로 지내는 동안 실업률은 절반으로 떨어지고, 보유외환은 58억 달러(1993년)에서 4794억 달러(2010년)로 82배 이상으로 늘었다.

옛 소련 붕괴 당시 모라토리엄(채무 지불유예) 직전까지 몰린 러시아를 비웃었던 서유럽 국가가 재정위기로 허덕이는 현재, 러시아의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1.5%(2011년 추정치)로 양호한 편이다. 러시아는 유럽 구제금융 자금 100억 달러를 출자할 예정이다.

푸틴 전성기는 일종의 ‘러시아판 개발독재’ 시대와 비슷했다. 지구촌의 많은 국가들에서 경제 개발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중산층과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터져 나오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가 러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시위의 주축을 이루는 대도시 중산층과 젊은층들은 ‘푸틴 체제’로 대변되는 ‘경제적 자유+정치적 통제’ 상황을 거부한다. 러시아의 시위가 아랍의 재스민 혁명과 다른 점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빵보다는 자유’다.

푸틴 체제에서 독버섯처럼 자란 정경유착 비리도 푸틴을 외면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푸틴은 집권하면서 러시아판 권력형 축재 재벌이던 ‘올리가르히’의 척결을 외쳤으나 정작 그의 치세에서도 ‘신흥 올리가르히’가 독버섯처럼 늘어났다.

○ 이겨도 불안할 대선

‘푸틴 당’으로도 불리는 집권러시아당이 지난해 12월 4일 얻은 득표율은 49.5%로 2007년의 64.3%에 비해 15%포인트가량 줄었으며 의석수도 315석에서 238석으로 줄었다. 그나마 ‘사전투표 용지 투입’ ‘개표 조작’ 등에 의한 것으로 야당은 실제로는 30%대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총선 부정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에 놀란 푸틴은 대선에서 전국 9만4000여 개 투표소에 웹 카메라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부에서는 자신의 복귀에 대한 거부감이 사그라지지 않으면 ‘복귀 체제’의 한 축인 ‘메드베데프 총리’ 카드를 버릴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3월 4일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의 후보 등록 마감은 이달 18일. 현재는 푸틴을 위협할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이변이 없는 한 푸틴이 당선될 가능성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푸틴의 심기는 느긋할 수 없다. 지지도가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폼(FOM)이 지난해 12월 24,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푸틴에 대한 지지도는 44%로 2008년의 60%에서 크게 낮아졌다. 이는 푸틴이 대선 1차 투표에서 승리(50% 이상 지지 필요)를 확정짓지 못하고 2차 투표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대선 전까지 ‘반푸틴’ 시위가 몇 차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때 시위가 격화되고 유혈 진압 사태라도 벌어지면 푸틴의 대선 가도에 복병이 될 수도 있다. 다만 푸틴이 오랫동안 정치적 라이벌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통제한 영향 등으로 뚜렷한 대항마가 나타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러시아의 3대 재벌로 미국 프로농구팀 ‘뉴저지 네츠’의 구단주로 유명한 기업인 미하일 프로호로프(47)가 출마를 선언해 관심을 끌고 있지만 그는 중산층과 젊은 유권자들의 불만을 대리 배출시키기 위해 푸틴 측이 내세운 위장후보라는 주장이 나온다. 최대 야당인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의장(67)은 과거 3차례에서 2위를 한 것처럼 이번에도 2위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 푸틴의 대서방 정책 어디로

푸틴은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15년간 근무하는 등 냉전시대 최전선에 있었지만 냉전은 러시아만 고립시키고 속으로 곪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병자 러시아’가 회복하기 위해 서방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한 시대 상황과도 맞물려 푸틴은 서방과의 유화정책을 펴왔다. 과거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던 상당수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거나 옛 소련을 겨냥해 결성된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는 것도 용인하거나 지켜보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러시아가 다시 강대국의 면모를 회복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러시아와 접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푸틴은 국내적으로 자신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열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서방과의 긴장관계를 이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군사적으로는 고비용 구조의 핵개발에서 첨단 재래식 무기 무장을 통한 군사 강국을 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토머스 프리드먼 칼럼 “세계화 - IT혁명이 푸틴 체제 뒤흔들 것” ▼


역사가 월터 러셀 미드는 소련을 붕괴시킨 1990년대 혁명 후 “러시아인들은 ‘생선 수프를 수족관으로 바꾸는 것보다 수족관을 생선 수프로 바꾸는 것이 더 쉽다’는 격언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돼 유럽에서 중동까지 많은 수족관이 지금 생선 수프로 바뀌는 중이다. 아마 곧 러시아와 아시아도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냉전 이후 때처럼 다시 대폭로의 시대에 서 있다. 이번에는 전쟁이 없었지만 많은 국가가 붕괴됐다. 왜?

주요 동인은 세계화와 정보기술 혁명이라고 믿는다. 이 두 가지는 21세기 10년 동안 취약한 국가나 허약한 기업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민주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미 합참의장 보좌관이었던 마크 마이클레비가 ‘기대의 민주화’라고 부르는 것을 봤다. 그것은 모든 개인이 자신의 직업과 시민권, 미래를 형성하는 데 제한받지 않고 참여할 수 있다는 기대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말이 내가 이전에 들었던 호스니 무바라크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말과 너무나 비슷해 충격을 받았다. 이집트 작가 알라 알 아스와니는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넘겨주려는 무바라크의 계획에 이집트인들이 분노했다고 말했었다. 러시아 인기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는 “우리는 가축이나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와 투표권,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LRN(윤리적 기업환경 컨설팅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도브 시드먼은 “일방적 대화를 통한 선도 국가나 선도 기업의 시대는 끝났다”며 “당근과 채찍을 통해 사람에게 권력을 사용하는 ‘명령과 통제’의 구체제는 사람을 통해 권력을 일으키는 ‘연계와 협동’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총리는 그가 국민들에 대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 권력에 머무는 것을 정당화하는 대화를 강요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주력상품인 청량음료를 휴일에는 하얀 캔에 포장했다. 그러나 고객들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고 일주일 만에 하얀 캔에서 붉은 캔으로 돌아갔다.

지금 지도자의 역할은 아래로부터 올라오고 있는 것을 최대한 이해해 그것을 위로부터의 비전과 융합시키는 것이다. 듣고 있습니까, 푸틴 총리!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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