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세계 장수촌]<3·끝>이탈리아 사르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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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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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목동 자가용 출퇴근… 두둑한 뱃살에 “아 옛날이여”

58세 현대목동 vs 77세 전통목동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장수의 상징이었던 전통목동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된 누오로 시내 자택에서 재킷을 입고 있는 이냐치오 포주 씨(왼쪽)는 매일 자가용으로 산속의 축사로 출퇴근하는 현대식 목동
이다. 반면 우르출레이 마을 산속에서 가축과 함께 사는 프란체스코 안토니오 메시나 씨는 보름에 한 번 마을로 내려오는 전통목동이다.
58세 현대목동 vs 77세 전통목동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장수의 상징이었던 전통목동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된 누오로 시내 자택에서 재킷을 입고 있는 이냐치오 포주 씨(왼쪽)는 매일 자가용으로 산속의 축사로 출퇴근하는 현대식 목동 이다. 반면 우르출레이 마을 산속에서 가축과 함께 사는 프란체스코 안토니오 메시나 씨는 보름에 한 번 마을로 내려오는 전통목동이다.
《 이탈리아 수도 로마 인근 해안에서 서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지중해의 섬 사르데냐. 제주도 면적의 약 13배인 사르데냐는 주민 167만 명 가운데 100세 이상 장수자가 361명에 달한다. 10만 명 중 약 22명이 100세 이상 사는 셈이다. 특히 사르데냐에는 세계 유명 장수촌과 다른 뭔가 특별한 게 있다. 100세 이상 장수자의 남녀 성비가 비슷하다는 것. 다른 지역에선 100세 이상 남녀 성비가 1 대 5로 나타나지만 사르데냐에선 1 대 2, 특히 이곳의 바르기야 마을 등 특정지역에선 성비가 1 대 1을 보이기도 한다(사사리대 프란체스코 톨루 박사 자료). 》
사르데냐 남자들이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은 얘기가 바로 ‘목동’이다. 바위산을 쉬지 않고 오르내리는 목동생활 덕분에 강인해진 목동 유전자가 사르데냐 주민의 피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어리의 영어 명칭 사딘(sardine)은 사르데냐 앞바다에서 정어리가 많이 잡혔다는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어업이 활발한 서북 해안보다는 목동이 많고 접근이 쉽지 않은 중동부 산간지방에 장수촌이 몰려 있다는 것도 목동 유전자 추론을 뒷받침한다.

이런 사르데냐 장수촌이 요즘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장수촌을 가능케 했던 목동 유전자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 운동량 줄어든 현대적 목동

사르데냐 섬 누오로 시내의 가정집에서 만난 이냐치오 포주 씨(58).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자녀들에게 점심식사를 챙겨주고 숙제를 돌봐주던 그의 마음이 조급해진다. 오후 4시경 퇴근한 아내에게 자녀 돌보기 임무를 넘겨준 포주 씨는 일터로 나설 준비를 했다. 집에서 약 13km 떨어진 산속에 포주 씨가 기르는 양 250마리, 산양 30마리, 소 15마리, 젖소 4마리가 기다리고 있다.

목동인 아버지에 이어 열세 살 때부터 가축을 길러온 그는 승용차를 타고 매일 ‘일터’로 출퇴근한다.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한 집 안에서 양복 상의를 입은 데다 뱃살이 꽤 많이 붙은 그에게선 목동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전통적인 목동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고 에둘러 말하자 그는 “나도 총각 때는 산속에서 대부분 생활했다. 당시엔 몸무게도 60kg 정도였다. 지금도 산속에서 하루에 15km 정도를 걸을 정도로 바삐 움직인다”고 말했다.

과거 사르데냐 목동들은 매일 20km 이상을 걷고 산양 젖으로 만든 치즈와 옥수수 전병을 먹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생활스타일을 유지하는 목동은 드물다.

어렵게 그런 목동을 한 명 소개받았다. 섬 중심의 누오로 시 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우르출레이 마을에 도착해 차를 타고 산길을 오르자 프란체스코 안토니오 메시나 씨(77)가 키우는 가축들이 나타났다. 약 160cm의 작은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큰 손으로 가축에게 먹일 사료를 거침없이 옮기던 메시나 씨는 섭씨 1, 2도의 겨울 날씨에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렀다. 그는 과자처럼 얇게 만든 빵과 산양 젖으로 만든 치즈인 ‘카라사우’를 먹으며 생애 대부분을 산속에서 가축들과 어울려 지내왔다.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양 젖을 짜고, 치즈를 만들고, 가축을 몰아 산에 올라가고, 사료를 챙기고, 가끔 새끼 낳는 것을 돌봐주고….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에게는 보름에 한 번 필요한 물건을 챙기러 산 아래 마을에 있는 집에 가는 것이 세상사에 섞이는 유일한 기회다. 메시나 씨는 “양들에게 먹일 풀을 찾아서 산속을 헤매다 보면 생존 차원에서 강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제 젊은 사람들은 목동 일에 별로 관심이 없고 일도 편하게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기피대상 직업으로 전락한 목동

목동들은 사르데냐 장수의 전설적인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산림청 공무원과 미장공으로 일했던 프랑코 데메라스 씨(62)는 “과거엔 섬 서쪽 해안의 어부를 제외하면 목동 말고는 따로 선택할 직업이 없었다”며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술집과 디스코텍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고학력 실업자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르데냐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빈자리를 루마니아나 아프리카의 세네갈 등에서 찾아온 외국인 목동이 빠르게 메우고 있다. 농부 고나리오 탄자누 씨(53)는 “목축업은 이제 사르데냐의 주요 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라스 진바티스타 올리아스트라 주의원(39)은 “하루의 대부분을 가축들과 씨름해야 하고, 바캉스는 꿈도 꿀 수 없는 목동생활을 젊은이들이 좋아할 리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목동들도 차량에 의존하다 보니 운동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심지어 요즘 가축들은 차량이 다가와도 겁내지 않고 반길 정도라고 한다. 목동들이 차를 타고 오면 먹을 것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파스괄레 보에 씨(70)는 “최근 사르데냐 지역이 오염되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은 마약과 담배, 술에 많이 의존하는 문란한 생활을 한다”며 “먹거리도 자연적인 것이 아닌 공장 생산품이어서 젊은이들이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뛰어난 장수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생활환경과 습관이 점점 악화된다는 것이다. 슬로바키아 출신 엘리사베타 페레조바 씨(43·여)는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현재 노인들과 달리 여기서 벗어나려는 젊은이들이 노인이 되면 지금처럼 장수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론 생활환경의 변화 때문에 마이너스 효과가 있다 해도 의학 발전이 이를 상쇄해 장수촌의 명성은 유지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없지는 않다. 올리아스트라 주의회 직원인 세르조 로라이 씨(28)는 “젊은층의 생활환경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유전적 또는 환경 변화에 부응하는 의학 발전으로 좋은 약이 나오고 있어 장수하는 사람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장수촌 명맥 유지 사력 다하는 당국

생활환경 변화를 걱정하는 사르데냐 행정당국은 장수촌 유지 대책을 내놓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2개의 장수연구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프로제니아 프로젝트는 2001년에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공동으로 올리아스트라 주의 라누세이, 아르차나 등 4개 지역 14∼102세 지원자 6148명의 신장, 몸무게, 성격, 혈액, 콜레스테롤 수치 등 50가지 요소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연구하고 있다. 유전적 특징이 장수에 주는 영향을 찾아 유전병을 치유하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100세까지 살기를 기원한다는 사르데냐 말인 ‘아켄타노스(A Kent'Anos)를 줄인 아케아(AKeA)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사사리대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미국 듀크대가 공동으로 사르데냐 전역 100세 이상 장수자의 유전 자료를 모으는 작업이다.

브루노 필리아 올리아스트라 주지사는 “지역 주민들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유전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프로제니아 연구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제니아 프로젝트 실험대상에 자원한 아르차나 시의 마르코 멜리스 시장(41)은 “장수촌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노인들이 서로 만나서 소통하거나, 과거 직업을 통해 배운 특기를 젊은이에게 가르침으로써 삶의 의욕을 갖도록 도와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100세人들이 말하는 비결
“와인 한잔과 小食, 그리고 수다” ▼
‘가족과 즐거운 대화’ 공통점


사르데냐 섬 누오로 시에 사는 레나토 탐포니 씨가 콩과 토마토를 올리브유에 데친 요리를 와인과 곁들여 먹고 있다.
사르데냐 섬 누오로 시에 사는 레나토 탐포니 씨가 콩과 토마토를 올리브유에 데친 요리를 와인과 곁들여 먹고 있다.
사르데냐 누오로 시내에 거주하는 레나토 탐포니 씨(97)의 집 방문은 마치 한 편의 시트콤 촬영장을 다녀온 것 같았다.

탐포니 씨를 만나기 직전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 씨(46)는 “외출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스트레스를 떠넘긴 덕에 건강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몇 해 전 그의 부인 마리아 씨(85)가 큰 수술을 받고 퇴원한 다음 날에도 그는 집 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부인에게 화를 낼 정도였다고 한다.

탐포니 씨를 만나 건강 비결을 묻자 “나는 다정다감한 사람이다”라고 운을 뗀 뒤 “항상 운동했고, 끼니마다 와인 한 잔을 마신다”고 말했다. 옆에서 부인은 “나 같은 여자와 결혼한 덕분”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매일 오전 7시에 기상하는 탐포니 씨는 장수의 비법에 대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배고픔을 항상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점심으로 나온 식단을 보니 올리브유와 함께 요리한 토마토파스타와 콩 종류의 음식 두 가지뿐이었다. 그는 절대 과식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청력이 약해진 것 말고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63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는 시종 악의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없이 정겨워 보였다.

기자가 만난 다른 사르데냐 장수 가족도 이들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공통점이었다. 아르차나 시에서 딸 가족과 함께 사는 프란체스카 만카 씨(100·여)를 만나는 자리에도 가족들이 함께했다. 자식을 10명 낳았고 손주가 16명, 증손주가 18명인 그는 여전히 뜨개질을 하거나 성경을 읽는다고 했다. 제일 즐거운 일이 뭐냐고 물었다. “여덟 살짜리 증손자가 전화해서 ‘할머니 저 시험 잘 봤어요’라고 하는 게 좋더라.”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만카 씨는 살코기 적당량과 파스타, 과일, 야채 등을 고루 먹는다. 매일 오전 8시에 일어나 카페라테를 한 잔 하고 2주일에 한 번 정도 비스킷을 먹는다고 한다.

룰라 마을의 니노 데메라스 씨(101)는 딸과 사위, 아들, 증손주들과 함께 옛 기억을 떠올리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언제라도 즐겁다고 말했다. 예전 목동생활을 했던 마살라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그는 와인잔을 비운 뒤 “정말 맛있다”고 말했다. 딸 마리아 씨(66)는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일하던 곳을 아직 구석구석 기억하고 있고, 그곳만 생각하면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사르데냐=글·사진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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