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의 성장엔진을 찾아라]<3>네덜란드의 첨단 농업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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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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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전문가 1만5000명 ‘인류-국가 먹을거리’ 찾아 나섰다

바헤닝언대의 에버르트 야콥선 교수가 자신의 실험실에 보관 중인 감자 종자들을 살펴보고 있다.야콥선 교수는 감자역병 퇴치의 세계적 권위자로 중국 및 북한 과학자들도 이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다. 바헤닝언=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바헤닝언대의 에버르트 야콥선 교수가 자신의 실험실에 보관 중인 감자 종자들을 살펴보고 있다.야콥선 교수는 감자역병 퇴치의 세계적 권위자로 중국 및 북한 과학자들도 이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다. 바헤닝언=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85km 떨어진 바헤닝언 시. 인구 3만6000명의 소도시이지만 세계 최대의 식품산업 클러스터인 ‘푸드밸리’가 자리 잡고 있다. 푸드밸리에는 유럽 최고의 농업대학으로 꼽히는 바헤닝언대 및 연구센터(UR), 식품회사 70여 개, 식품 관련 회사 1400여 개가 집중돼 있다. 네슬레 유니레버 하인즈 하이네켄 등 유수 식품기업 연구소도 있다.

푸드밸리의 식품산업 관련 종사자는 총 2만여 명. 이 중 1만5000여 명이 연구개발(R&D)에 종사하는 과학자나 기술자이다. 식품 과학자와 연구원 밀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바헤닝언=푸드밸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13일 이곳을 찾았을 때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한겨울이었지만 연구 열기는 뜨거웠다. 바헤닝언 UR 식품연구소의 프로그램 매니저인 크리스티안 볼크 씨는 “바헤닝언은 지식산업과 기업이 만나 농업과 식품 혁신이 진행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 2020년 인류 위협 해결 나서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이 남한의 절반도 안 되지만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농산물 수출을 많이 하는 농업선진국이다. 네덜란드의 농식품 생산액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0%인 480억 유로(약 71조 원). 이 중 절반가량인 230억 유로는 수출로 벌어들인다. 농식품 분야 종사자는 약 67만 명에 이른다.

21세기 지식 기반 경제를 주도하기 위한 핵심 경쟁력도 생명과학에서 찾고 있다. 네덜란드 생명과학자들은 최근 펴낸 ‘네덜란드 생명과학의 비전’이라는 책에서 2020년 인류의 가장 큰 위협으로 식량, 기후 변화, 에너지를 꼽았다. 농업생명과학은 이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핵심 분야. 생태계에 주는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농업 생산력은 높이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바헤닝언은 지식기관인 대학과 기업, 정부가 합심해 농업과 식품 분야 연구를 이끄는 심장이다. 에버르트 야콥선 교수가 이끄는 ‘감자역병연구소’ 연구실은 감자역병에 대한 저항 유전자를 가진 감자를 개발하고 있다. 야콥선 교수는 “감자는 한 세대가 7년이나 되기 때문에 확실한 새 종자를 개발하려면 50년 이상이 걸린다”며 “유전공학으로 세대의 간격을 짧게 하고 수분이나 양분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종자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실은 북한에서 온 과학자 2명도 연구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글로벌화돼 있다.

○ 경쟁사들도 함께 연구하는 산학협동

푸드밸리 재단의 로허르 판 후설 대표는 푸드밸리의 장점으로 바헤닝언의 오랜 산학협력 전통을 꼽았다.

최근 트렌드는 식품회사들이 개별적으로 대규모 R&D 센터를 운영하기보다는 별도의 전문 연구기관이나 회사에 R&D를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TI 식품영양연구소’의 경우 유니레버 네슬레 다논과 같은 유수의 기업들이 연합해 운영을 지원하고 이 연구소에 용역을 준다. 경쟁사라고 하더라도 식품산업 발전을 위한 기본적 연구는 함께하는 것이다.

바헤닝언과 함께 네덜란드 생명과학을 이끄는 양대 축인 ‘레이던 생명과학 단지’에도 식품산업 리서치 전문기업이 많이 생기고 있다. ‘피타고라스 BV’는 종자와 곡물의 성장을 측정하는 기술 및 장비 개발이 전문인 회사. 식물생리학뿐 아니라 광학 기계공학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으며 주로 종자회사나 식품회사들로부터 용역을 받는다.

레이던대 식물생리학 교수면서 이 회사의 과학 매니저로 일하는 베르트 판 다윈 교수는 “센서기술은 모든 종자회사에 필요한 기술인데 이를 따로 연구한다면 엄청난 자원 낭비가 될 것”이라며 “전문 회사에 아웃소싱하면 비용을 크게 절감하고 기술도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 매출의 25%를 R&D에 투자

네덜란드의 농업생명과학 발전의 핵심에는 이 같은 정부, 기업, 연구기관 간의 긴밀한 협력이 있다. PPP라 불리는 공공-민간 파트너십(Public-Private partnership) 모델이다.

기업들의 R&D에 대한 투자도 깜짝 놀랄 규모다. 네덜란드 종자 회사들은 총매출의 25% 정도를 R&D에 투자한다. ‘고다 치즈’로 유명한 하우다 시에 위치한 ‘TI 녹색유전학연구소’는 식물 종자들의 유전정보를 모아서 더욱 효율적이고 건강한 종자를 개발하는 것이 임무다. 이곳 대표를 맡고 있는 베르하르트 더 회스 교수는 “병충해가 계속 생기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종자 개발을 하지 않으면 인류는 5년 이내에 식량 부족 상태에 빠진다”며 “이런 장기적인 연구를 개별 기업이 하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공동 프로젝트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네덜란드의 ‘푸드밸리’를 벤치마킹한 ‘푸드폴리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의 공공-민간 협력 분야는 모범적이다.

네덜란드는 1880년대 농업위기 때 식량 대란에 빠지자 품질관리, 교육, 공공농업기술 지도, 연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국토가 황폐화된 뒤에도 교육과 농업 R&D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 같은 연구와 투자, 혁신적인 협력체제는 네덜란드를 농업 및 식품산업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식물 종자 분야에서만 네덜란드는 한 해(2008년) 25억 유로(약 3조67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 유럽의 식물 종자 분야 특허의 40%가 네덜란드에서 나온다. 네덜란드는 축산과 동물 방역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그래서 2020년 ‘생명과학의 세기’가 본격화되면 세계가 자신들의 무대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헤닝언·레이던·하우다=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음식 골라 계산대 서는 순간, 칼로리도 자동 계산▼


■ 바헤닝언大 ‘미래 레스토랑’

씹을때 얼굴근육 변화도 체크… 먹는 곳이 곧 식문화 연구소


‘미래의 레스토랑’에서 한 고객이 음식을 고른 뒤 결제하고 있다.
‘미래의 레스토랑’에서 한 고객이 음식을 고른 뒤 결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바헤닝언대를 방문했을 때 바우커 더 포스 공보관은 점심시간에 기자를 구내식당으로 초청했다. 캠퍼스 한편에 통유리로 된 식당의 이름은 ‘미래의 레스토랑(Restaurant of the Future)’.

얼핏 보면 일반 구내식당과 비슷하지만 이곳은 식생활의 모든 것을 연구하는 아주 독특한 첨단 실험단지다. 이곳은 음식 배치에 따라 소비자의 메뉴선택이 어떻게 바뀌는지, 조명과 음악, 식기에 따른 식습관은 어떻게 바뀌는지 등을 관찰하고 연구한다.

별 생각 없이 음식 몇 개를 집어 왔더니 포스 공보관은 “당신이 먹는 음식의 칼로리와 몸무게도 이미 기록됐다”고 귀띔한다. 음식을 고른 뒤 계산대에 서면 아래의 체중계가 자동으로 몸무게를 측정한다. 교직원 카드로 결제를 하자마자 고른 음식과 칼로리가 입력된다는 것.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기둥 곳곳에 카메라가 숨어 있었다. 이 카메라들은 고객들의 움직임뿐 아니라 음식물을 씹을 때 얼굴의 근육 및 표정 변화까지도 녹화한다.

이 식당은 전문 케이터링 업체가 음식물을 공급하며 정보기술(IT) 전문기업이 내부의 카메라 등 관측 장비를 설치했다. 투자금액은 300만 유로(약 44억 원)에 이른다.

이 대학 식품연구소의 로터 케르크호번 씨는 “특정 메뉴를 선택하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인테리어가 식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식문화에 대한 모든 것을 보다 깊이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수집된 정보들은 새로운 식품 개발뿐 아니라 레스토랑 및 케이터링 서비스, 키친용품, 음식물 배달 및 포장 등에 활용된다.

포스 공보관은 “교직원들이 처음 이 식당을 이용할 때는 식사 장면이 녹화되고 관찰된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는다”며 “공공을 위한 연구이고 관찰도 의식하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에 대부분 이 식당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바헤닝언=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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