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1000년 타임캡슐]무엇을 넣어 보관할까?

  • 입력 1999년 12월 12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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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후세에 남겨줄 유물을 미리 직접 고르는 법은 없다. 진흙에 남은 발자국, 깨진 도자기 조각, 화산재 밑에서 겁에 질린 채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발견된 고대인의 시체 등은 모두 지나간 문명이 현대의 고고학자들에게 무심히 남긴 것들이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들▼

그러나 서기 2000년경의 미국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타임캡슐 안에 넣을 물건을 고르는 일은 분명히 후세에서 남겨줄 유물을 미리 고르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유물을 제대로 고르는 확실한 방법은 인구통계학적으로 미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마을의 다양한 미국인들을 상대로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햇살이 눈부신 어느날 오후에 콜로라도주 파운틴을 찾았다. 사실 모든 면에서 미국 전체의 인구통계와 맞아떨어지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파운틴도 전체 미국인에 대한 통계보다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좀 낮았지만, 그래도 전체 통계에 가장 가까웠다.

며칠 동안 파운틴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철조망의 철사 한 조각, 마이크로프로세서, 담배, 고등학교 교칙, 벽돌, 닌텐도 게임기, 식당 메뉴판 등 다양한 물건을 추천했다.

▼결혼반지 환경사진등…▼

그러나 문제는 이런 물건들이 1000년 후의 고고학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프린스턴 대학의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그 물건들은 스스로 의미를 드러내지 못한다”면서 파운틴 사람들이 이 물건들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물건들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파운틴에서 그 물건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그 물건들이 왜 선택되었는지 그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았다. 4학년 어린이들은 영화 ‘타이타닉’이 길이길이 보존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5학년 어린이들은 가스 브룩스 샤니아 트웨인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음악을 추천했다. 쿠웨이트가 미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어린이는 핵 조기경보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는 근처의 셰이엔 산 사진을 타임캡슐에 넣자고 했다.

▼性-정치관련 물건 없어▼

어른들도 사회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다양한 제안을 내놓았다. 파운틴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그레그 나이호프는 결혼반지를 타임캡슐에 넣자고 했다. 지금 이혼율의 증가추세로 봐서 1000년 후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예 사라지고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주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교사들은 요즘 학생들이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눈다고 놀라워했는데도, 성과 관련된 물건을 타임캡슐에 넣자는 의견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 밖에 미국정치와 종교도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은 주제였다.

기어츠는 나중에 파운틴 사람들이 추천한 물건들의 목록을 살펴보면서 “여기에는 일종의 씁쓸함이 있다”고 말했다. 깨끗한 개울물, 과거의 전통 등 이미 사라져버린 옛날 것들에 대한 향수가 배어 있다는 것이다. 파운틴 사람들은 매년 파운틴을 찾아오는 철새들조차 언젠가는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6/favorite-colo-benne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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