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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稅부담에 가업승계 포기… 성장엔진 꺼진 ‘히든 챔피언’

입력 2015-07-14 03:00업데이트 2015-07-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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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4부 : 고장난 세금제도]<4>유망中企 발목잡는 상속증여세 《 수도권에서 연매출 4000억 원 규모의 중견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사의 김모 사장(65)은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던 생각을 최근 접었다. 지난해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종자(種子)업체인 농우바이오의 창업주가 사망한 뒤 유가족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회사를 매각하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뀐 것이다. 김 사장은 “내가 사망한 뒤 아들이 물려받은 재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면서 가업을 이어가긴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5년 전 회사를 창업한 뒤 수천 명의 직원을 둔 회사로 키운 자부심이 크지만 세금 문제가 경영활동에 현실적인 부담이 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  이같이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에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들이 세금 문제로 사업을 접는다면 그만큼 국가의 성장엔진이 약해지고 일자리가 줄어 궁극적으로 나라 살림살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 정부는 가업을 승계할 때 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업상속공제의 기준을 대폭 완화한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히든 챔피언’을 키워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는 경제논리와 부(富)의 세대 간 이전을 어렵게 해 양극화를 줄여야 한다는 정치논리가 충돌하며 관련 세제 개혁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 세 부담에 가업승계 포기하는 기업 많아

정부는 장수 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기업인 사후 상속 시 가업상속공제’라는 명목으로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상 매출 3000억 원 미만인 중소기업은 가업을 상속할 때 과세표준(세금 부과 기준금액)에서 최대 500억 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지난해 세법 개정 당시 정부는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의 기준을 ‘매출액 3000억 원 미만 기업’에서 ‘매출액 5000억 원 미만 기업’으로 수정했다. 가업승계를 제2의 창업으로 보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재계의 건의에 따라 공제 대상 기업을 확대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세법 개정이 보류되면서 기업들은 여전히 가업상속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가업상속 건수는 2008년 51건, 2010년 54건, 2012년 58건, 2013년 70건 등으로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가업을 승계해야 할 많은 사람이 세금 부담 등으로 가업승계를 포기하고 있다.

1998년 설립된 광통신 관련 업체 우리로광통신은 창업주가 2013년 3월 사망하며 부인, 자녀 등 4명이 지분 42.74%를 상속 받았다. 유가족은 140억 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보유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인이 가업승계를 포기한 뒤 경영이 위축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생필품 제조업체는 2008년 창업주가 사망한 뒤 유족들이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주식을 매각했다. 그 여파로 매출액은 2008년 267억 원에서 지난해 188억 원으로 쪼그라들었고 종업원 수는 2006년 192명에서 2014년 129명으로 감소했다.

○ ‘기는 한국, 뛰는 일본’ 고착화 우려

경제전문가들은 원활한 가업승계를 통해 경제활성화를 이루려면 창업주 사후 상속보다 생존 시 증여를 독려해야 한다고 본다. 창업주가 살아 있을 때 가업승계가 이뤄져야 경영 노하우 및 리더십을 전수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속증여세제는 ‘창업주가 살아 있을 때 가업을 물려주는 것은 부를 대물림하는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큰 탓에 증여에는 공제 혜택을 많이 주지 않고 있다. 현행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 특례에선 가업승계를 목적으로 주식을 증여할 경우 증여재산 30억 원까지는 10%의 낮은 세율로 과세하고 30억 원이 넘는 재산에는 50% 세율을 적용한다. 지난해 세법 개정 당시 정부는 증여재산 100억 원까지를 10∼20% 세율로 과세하는 구간으로 정했다. 100억 원 중 30억 원까지는 10% 세율을 매기고 30억 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20% 세율로 과세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부자 감세’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은 창업주가 비상장 주식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세금 부과 기준 금액인 과세표준(과표)을 실제보다 더 늘려 중과하는 ‘할증과세’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시가 500억 원짜리 비상장주식 지분 51%를 갖고 창업주가 사망한 뒤 상속할 때 증여세 과표는 500억 원에다 30%의 할증을 적용한 650억 원이다.

이런 한국 상속·증여세제는 최근 몇 년 새 아베노믹스를 통해 가업승계를 장려하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일본 정부는 경영진의 고령화와 건강 악화로 중소기업의 폐업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경영권 조기 승계를 독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6년부터 중소기업 사주가 친족이 아닌 사람을 후계자로 정해도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 상속, 증여 후 ‘5년간 고용을 매년 80% 이상 유지해야 하는 의무조항도 5년간 고용을 평균 80%를 유지하면 고용 유지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조병선 숭실대 교수 겸 한국중견기업학회 부회장은 “창업주가 살아있을 때 차근차근 가업승계 과정을 밟아 나가야 조세 부담도 덜고 가업승계도 원활히 이뤄지는 점을 감안해 세제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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