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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손톱밑 가시’를 뽑자]컵라면 물 부어주는 것도 단속 눈치봐야 하는 PC방

입력 2013-01-12 03:00업데이트 2013-01-1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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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물을 부어 드셔야 한다고 하면 어린 학생들은 그럭저럭 받아들이는데 성인들은 화부터 냅니다. ‘왜 손님 대접 안 해 주느냐’라는 거죠. 단골이 기분 상해서 휴게음식점 영업허가를 받은 기업형 점포로 가는 걸 그저 지켜봐야 합니다.”

1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응봉동 응봉현대아파트 건너편 C&A PC방. PC 39대가 있는 전형적인 ‘동네 PC방’이다. 이천희 사장(40)은 “야유회 가서도 쉽게 만들어 먹는 컵라면을 손님에게 대접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식품위생법과 그 시행령·시행규칙에 들어 있는 ‘손톱 밑 가시’ 때문이다.

동아일보와 중소기업 옴부즈만실은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더욱 힘들게 하는 각종 애로, 즉 ‘손톱 밑 가시’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이를 뽑아 주자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 현실 모르는 불편한 가시

이 사장이 하소연하는 동안 젊은 남녀 커플이 들어와 카운터에 커피와 아이스티를 달라고 했다. 주문을 처리할 다른 종업원은 없다. 이 사장이 아르바이트생과 밤낮으로 맞교대하는 형편이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이나 나나 벌이가 비슷할 것”이라며 플라스틱 컵에 얼음과 냉 음료를 채운 뒤 뚜껑을 씌우고 빨대를 꽂아 자리로 들고 갔다.

게임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좋아하는 손님은 없다. 음료수든 재떨이든 작동 문의든 ‘서빙’이 기본이다. 하지만 컵라면을 먹겠다는 손님에게만큼은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라면은 여기 있는데 법 때문에…, 뚜껑을 뜯으시고 물도 정수기에서 직접 넣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게임하러 왔지, 라면 끓여 먹으러 왔느냐”라고 고함치는 손님은 양반이다. 보란 듯이 그 자리에서 짜장면을 주문하는 사람도, 일부러 라면수프 봉지를 뜯어 책상에 쏟는 사람도 있다.
▼ “애매한 식품위생법 시행령… 명확히 바꿔야” ▼

술을 제외한 음식을 조리·판매할 수 있는 분식점과 패스트푸드점은 현행 법규상 식품접객업 중 휴게음식점업으로 분류된다. 이 사업을 하려면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행령에 ‘편의점과 슈퍼마켓, 휴게소 등에서 컵라면과 일회용 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주는 경우는 제외한다’라는 예외 규정이 있는데, 여기에 PC방과 만화방이 포함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어떤 자치구에서는 단속하고 어떤 곳에서는 하지 않으니 업주들은 몸을 사리게 된다.

‘허가를 받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이 사장은 “우리 가게는 23.76평(약 78m²)입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휴게음식점 영업허가를 받으려면 조리시설을 갖추고 차단벽, 칸막이를 설치해야 한다. 그나마 그 기준도 자치구마다 다르다. PC방 사장들이 ‘○○구에서는 옹벽을 터서 문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라는 식의 ‘허가 노하우’를 서로 공유할 정도다.

○ 큰 업소 편드는 이상한 가시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컵라면뿐 아니라 봉지라면을 편법으로 끓여먹을 수 있는 PC방도 적지 않다. 작은 PC방에는 대개 ‘봉지라면 자판기’가 있다. 봉지라면을 끓여 달라는 손님이 있으면 주인이 2000원을 받은 뒤 200원을 자판기에 넣고 손님에게 제품을 준다. 손님이 등산용 코펠처럼 생긴 그릇에 내용물을 넣은 뒤 ‘자판기’에 올리면 끓는 물이 나오고, 밑바닥의 열선이 그릇을 데운다. 손님이 그릇을 가져가서 라면을 먹고 나면 설거지는 주인 몫이다. 자판기에 들어간 200원은 자판기 업주가 나중에 가져간다. 손님이 직접 끓여 먹었으니 조리·판매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PC 수백 대를 갖춘 기업형 PC방은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영업허가를 받고 오므라이스, 돈가스 등의 식사 메뉴를 제공한다. ‘종합서비스 공간’을 표방하는 기업형 PC방과 그런 대형 점포를 편드는 규제 앞에 ‘생계형’ PC방은 속수무책이다.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이런 현실을 모르고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령은 바꾸지 않았지만 2011년경 ‘PC방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줘도 된다고 해석하라’라고 전국 지자체에 공문을 보냈다. 업주들에게 일일이 알릴 수는 없었다”라며 “지자체가 이후 단속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지자체에 보냈다는 공문은 일선 업주는 물론이고 한국인터넷PC방협동조합에도 전달되지 않았다. 최승재 PC방조합 이사장은 “우리는 그런 공문을 받지 못했다”라고 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실 관계자도 “지자체 담당자들은 계속 바뀌는데 누가 2년 전 공문을 확인하며 일하겠느냐”라며 “지자체와 PC방 업주들이 명확히 알 수 있게 시행령을 바꿔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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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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