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2모작]3星장군서 농사꾼으로 이성규 前국방부 정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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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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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호령하던 ‘스리 스타’
“이젠 흙에서 ‘별’을 캡니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 묵안1리에는 2년 전부터 산비탈을 일궈 과수농사를 짓는 한 전직 고위인사가 살고 있다. 이곳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려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진입도로가 넓지 않아 오가는 사람이 적다 보니 여느 한적한 시골과 다름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 60여 가구 주민들은 보기 드문 이 고위인사를 ‘장군님’이라고 부른다. 이 인사가 육군 중장을 끝으로 예편했기 때문이다.》
軍요직 두루 거친 ‘엘리트’… 2007년 예편후 ‘귀거래사’
굴착기 운전배워 직접 개간…시행착 오 속 한걸음씩 전진
“친환경농법보다 어렵다는 자연농법으로 승부할 것”

○ 화려했던 과거를 묻어두고


이성규 ‘장군 출신 농부’는 인생 100세 시대에 평생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분야가 농사라고 판단해 일찍부터 귀농을 준비했다. 이 전 장군이 집에서 난방용으로 사용할 나무를 지게에 지고 눈 쌓인 비탈을 내려오고 있다. 가평=이훈구 기자
이성규 ‘장군 출신 농부’는 인생 100세 시대에 평생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분야가 농사라고 판단해 일찍부터 귀농을 준비했다. 이 전 장군이 집에서 난방용으로 사용할 나무를 지게에 지고 눈 쌓인 비탈을 내려오고 있다. 가평=이훈구 기자
이성규 전 국방부 정보본부장(60)은 2007년 11월 육군사관학교 화랑의식에 참석했다. 36년 전 28기 ‘대표화랑상’을 받았던 육사에서 군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보통 군 장성들은 자신이 지휘했던 일선 부대에서 전역식을 거행한다. 하지만 그는 후배 지휘관과 일반 장병들을 번거롭게 하기 싫다며 육사행을 선택했다. 그는 이날 1000만 원을 육사 발전기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 전 장군의 군 경력은 누구 못지않게 화려했다. 3공수 여단장과 대통령국방비서관을 거쳤고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차장, 수도군단장을 지냈다. 야전 경험도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한미 연합작전의 전문가로 꼽혔다. 영국 참모대학에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영어 실력도 뛰어났다. 연합사 시절에는 6·25전쟁 참전국들이 주최하는 각종 사교모임에도 자주 참석해 군사외교에도 능숙했다.

이 정도 경력이라면 예편한 뒤 군 관련 고위직을 맡거나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전 장군은 많은 군 선배들이 걸었던 이러한 길을 마다했다. 그는 “군 관련 고위직 공개모집에 신청하기 싫었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정치인 변신도 내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생을 직업 군인으로 보낸 그가 선택한 제2직업은 ‘농사꾼’이었다.

그는 어릴 때 외할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농대로 진학할 생각을 품기도 했다가 육사로 방향을 잡았다. 공병감(소장)까지 지내고 예편한 부친 역시 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장만하기도 했다. 부친은 결국 농사를 짓지는 못했지만 자신은 농부가 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농부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 100세 시대에 평생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충분한 시간 두고 철저하게 준비


그는 예편하자마자 굴착기 학원에 등록했다. 산을 개간해 과수원을 일구려면 굴착기 운전이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굴착기 면허는 어렵지 않게 땄지만 수월하게 운전하기까지는 1년 정도 시간이 걸렸다. 과수 농사를 지을 현재의 터를 찾는 데도 공을 들였다. 원래 그는 1997년 경기 고양시 벽제동에 집을 마련해 텃밭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이 점차 주택단지로 바뀌자 새로운 곳을 물색하다 2002년 묵안1리를 발견하고 7800평 정도를 매입했다.

그는 지역주민들과 융화하기 위해 전직 장성이라는 생각을 털어내고 스스로를 낮췄다. 땅을 장만하자마자 마을회관의 노인정을 찾아 술을 받아드리면서 깍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 뒤로도 1년에 한두 차례 마을 어른들에게 술을 대접하며 예의를 갖췄다. 그는 “집을 짓고 이사 올 때 마을에 시루떡을 돌리며 인사했고 길 가꾸기나 꽃 심기 같은 공동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정착한 지 2년이 지나자 마을 주민들은 그를 정부가 추진하는 농어촌종합개발사업의 묵안1리 추진위원으로 선출했다.

오래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작한 농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농업을 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벽제 시절 텃밭 경험은 본격적인 농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습기 많은 땅에 감자를 심는 바람에 썩혀 버린 일처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여름에 비가 많이 와도,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도 개간한 땅이 쓸려 내려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초보 농부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꿈을 품고 있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연농법을 수행하는 것이다. 자연농법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농법보다 더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과수원 터 2000평도 굴착기를 몰아 개간했고 매실 묘목도 혼자 힘으로 직접 심었다. 이제는 농촌생활의 열렬한 지원자가 된 부인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그는 “농사는 적어도 4, 5년은 지나야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올해는 친환경 특화작목반에 가입해 공동 구매와 판매방법을 배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평=이진 기자 leej@donga.com
강창희 소장의 한마디


은퇴 후 귀농에 성공하려면 농촌생활의 실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가족의 동의도 필요하다. 함께 살아야 하는 지역주민들과의 막힘없는 교류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농촌생활이 낭만적일 거야’라고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이다. 이 전 장군이 귀농생활에 정착해 가는 것은 이런 요소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충분한 사전 준비기간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 장군은 자산관리 방식 또한 매우 합리적이다. 자산을 부동산과 금융상품으로 절반 정도씩 나누었고 금융자산은 용도별로 생활용과 투자용 등으로 나눠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퇴직연금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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