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2모작]건설사 CEO서 서양화가로 이서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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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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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세 소년’ 여덟살로 돌아가다
그 시절 꿈을 그리다

건설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늦깎이 화가인 이서형 화백은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신예 못지않은 열정을 불태우며 매일 캔버스 앞에서 작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건설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늦깎이 화가인 이서형 화백은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신예 못지않은 열정을 불태우며 매일 캔버스 앞에서 작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누구나 한때 두 갈래 길 앞에서 망설였던 적이 있을 것이다. 한쪽 길을 택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가지 않은 길’은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서양화가 이서형 화백(66)은 한참 지난 길을 되짚어 애초에 선택하고 싶었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두 갈래 길을 모두 경험한 사례에 해당한다. 또 그는 고용정년 뒤에 남은 시간을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고스란히 투자한 대표적인 은퇴자로 꼽을 만하다.》

26년간 건설현장 누벼
2003년 59세에 회화과 편입
51년전 ‘가지 못한 길’ 비로소 도전… 2007년 생애 첫 전시회
“가고 싶고 하고 싶은것 못해본 사람들, 주저말고 바로 시작하길”

○ 여덟 살 적 꿈 이순(耳順)에 도전


이 화백은 59세이던 2003년 용인대 회화과에 학사 편입했다. 1976년 율산건설에서 시작해 2002년 금호산업 고문을 끝으로 26년간의 건설인 생활을 정리한 이듬해였다. 이순이 가까운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51년 전의 기억을 잊지 못해서였다. 이 화백이 8세 때 그린 그림을 놓고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곧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림 그리기는 미련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만한 여유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7년간 금호건설 대표이사로 일했다. 은퇴 당시 그는 건설업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기록을 세웠다. 이런 그에게 수십 년간 잊고 지냈던 미술을 향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1999년 아내의 천식 증상을 다스리기 위해 경기 용인시의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것이 계기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자연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보노라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되살아났다.

하지만 20대의 학생들과 경쟁하며 그림을 공부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이 화백은 “처음엔 붓 쓰는 방법도, 재료 섞는 법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찌나 어렵던지…”라고 털어놓았다. 3학년 편입생이지만 ‘어린 동기’들보다 못한 실력을 기르느라 1, 2학년 전공과목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수강했다. 이러다 보니 그려 내야 할 과제가 동기들보다 2배나 많았다. 주중에는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고 주말에는 밀린 과제를 하느라 시간이 모자랐다. 명절 때는 도시락을 2개나 싸들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 단순 아마추어 넘어 프로 꿈꿔


이 화백은 지금도 오전 5시면 일어나 자택 인근에서 국선도 수련을 하고 아침을 먹은 뒤 산책을 한다. 오전 9시면 어김없이 반지하 창고를 개조한 작업실에 들어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 생각대로 작품이 그려지지 않으면 책을 읽으며 자세를 가다듬는다.

그는 미술 공부를 하면서 서양화로 방향을 잡았다. 서양화가 자유롭고 폭이 더 넓은 듯해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용인대 예술대학원을 졸업한 해인 2007년 12월 생애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일반 관람객들이 찾아와 그의 작품을 둘러보고 그림을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첫 전시회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아직 화가로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올해 3월 열리는 제2회 전시회에 온 힘을 쏟는 것도 이제 화가로 인정받고 싶어서다.

이 화백은 2008년 미국 버몬트 주의 ‘해외 입주 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했다. 개인 사정으로 연기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 프로그램은 젊은 화가들에게 1, 2년간 숙식과 공간을 제공하며 작품 활동을 하도록 돕는 행사다. 고희를 바라보는 그가 신예들과 경쟁하며 성과물을 내겠다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 화백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며 “각자의 취향에 따라 목표를 정하고 은퇴한 직후에는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시작해야 은퇴 이후의 삶이 빨리 자리 잡는다”고 조언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이서형 화백은:
1993∼1995 금호건설 전무
1993∼2002 한국주택협회 이사
1995∼1997 금호건설 대표이사 부사장
1997∼1999 금호건설 대표이사 사장
1997∼2001 한국광고주협회 감사
한국건설업체연합회 감사
1999∼2001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대표이사 사장
2002 금호산업 고문
2003∼2005 용인대 회화학과 편입, 졸업
2005∼2007 용인대 예술대학원 회화학과 졸업

강창희 소장의 한마디

후반 인생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자기가 하려는 일에 대한 소신 또는 긍지를 갖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후반 인생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서형 화백이 후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것도 ‘자기실현’이라는 목표를 분명하게 정하고 소신 있게 실천한 덕분이다. 그는 은퇴 전 마련한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임대료와 국민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다만 보유자산 중에서 부동산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대부분의 금융자산을 금리가 낮은 예금상품에 넣어둔 점은 다소 아쉽다. 나이를 고려할 때 금융자산의 비중을 높이고 이 중 일부를 혼합형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다.

강창희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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