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일과 삶]정진우 아카마이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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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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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벼린 회칼처럼 기본 갈고닦아야 성공”

어린 시절부터 요리를 좋아했다. 그 덕분에 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었지만 유학 시절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요리를 배웠다. 정진우 아카마이코리아 사장이 단골집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일식집 최수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어린 시절부터 요리를 좋아했다. 그 덕분에 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었지만 유학 시절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요리를 배웠다. 정진우 아카마이코리아 사장이 단골집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일식집 최수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생선은 손바닥으로 잡지 않아요.” 인터뷰에 쓸 사진을 찍기 위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일식집을 빌렸다. 그리고 아카마이코리아 정진우 사장에게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기자가 요청했다. “그 생선을 손에 좀 들어주세요.” 정 사장은 엄지와 검지로 생선의 끝부분을 살짝 쥔 채 못 만질 물건이라도 만진다는 듯 조심조심 들어올렸다. “좀 제대로 들어보세요.” 정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이 생선 못 먹어요.” 그는 “회를 뜨는 요리사는 생선을 손바닥으로 잡지 않는다”고 했다. 》
정 사장은 미국 유학 시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식집과 중식집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생선이 시장을 거쳐 식당까지 횟감으로 배달되고 식당을 찾는 고객의 입에 들어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만 하루다. 그 사이 수많은 기술과 노력이 들어간다. 얼음으로 가득 찬 어선의 저장고부터 냉장설비가 된 운반차, 순식간에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노련한 요리사까지 날생선의 운반은 수많은 에너지가 담긴 노력의 결정체다. 그런 생선을 접시에 올리기 직전에 섭씨 36.5도짜리 난로로 감싸 쥐라니….

결국 생선에 손가락만 살짝 대보며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른 많은 요리사처럼 그도 요리의 시작은 좋은 재료라고 말했다. 비즈니스도 다를 게 없었다. 좋은 성과의 시작은 좋은 사람들이다. 거기서 어긋나면 아무리 전략이 뛰어나고 자금이 풍부해도 될 일이 없게 마련이다.

지금 그는 아카마이코리아의 사장이다. 아카마이는 세계 최대의 콘텐츠딜리버리네트워크(CDN) 업체로 급증하는 인터넷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분산하는 일을 한다. 이 회사가 한국에 별도 법인을 설립한 건 지난해 3월의 일이다.

1년 반가량 지났다. 지금 아카마이코리아는 고객에게 나가기 직전의 초밥 접시 같다. 겉으로는 외국계 회사지만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은 한국인이고 생각도 모두 다르다. 마치 여러 종류의 초밥이 섞여 있는 접시 같다. 모두 초밥인데 어떤 초밥은 생선이고, 어떤 초밥은 새우를 얹었으며 다른 초밥은 계란이 위에 놓였다. “왜 한국 사람들끼리 회식하면서 술 한잔 하지 않느냐”고 불만인 직원과 “왜 외국계 회사에서 집들이 같은 문화를 강요해서 내 사생활을 회사 사람들에게 공개하길 원하느냐”고 불만인 직원이 공존한다. 하지만 그래도 초밥은 초밥이다. 그리고 다양한 초밥을 모아 맛있는 한 접시를 만드는 게 정 사장의 일이다.

그는 캘리포니아롤 얘기를 꺼냈다. “제가 만든 스시가 50종류쯤 되는데 아보카도와 베이컨을 얇게 생선처럼 밥 위에 얹어 만든 롤이 우리 가게에서 제일 인기 있는 메뉴였어요.” 미국인들은 날생선을 싫어하지만 스시는 즐긴다. 그는 현실을 인정하고 생선 없는 초밥을 개발하는 데 공을 들였다. “외국계 기업을 운영한다는 건 정신은 일본 스시지만 날생선은 들어있지 않은 캘리포니아롤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손톱에 칼날을 대보세요.”

주방에 들어가서 회칼을 들자마자 정 사장은 칼날을 엄지손톱에 가져갔다. 그러자 손톱에 칼날이 콕 박혔다. 날을 잘 벼렸다는 뜻이다. 그는 “사소한 일 같지만 이런 준비가 늘 돼 있는 식당이 좋은 식당”이라고 했다. 캘리포니아롤이 기업의 문화라면 잘 벼린 회칼은 일을 하는 자세다. 좋은 자세가 좋은 성과를 낳는다.

그는 중국식 볶음밥을 예로 들었다. 개인적으로 “전문요리사와 겨뤄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요리다. 볶음밥의 핵심은 재료다. 여기까지는 모두 안다. 하지만 결정적인 실력 차이는 재료를 다듬는 자세에서 생긴다. 많은 중국식당 요리사가 그저 남은 찬밥을 모아 볶음밥을 만든다. 갓 지은 더운밥은 잘 볶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남아의 쌀로 지은 밥으로 만들면 푸석거려 맛이 없다. 찬밥을 쓰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정 사장은 조금 달랐다. 밥을 지은 뒤 새 밥에 기름과 소금, 식초 등으로 미리 양념을 한다. 일식 초밥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조미한 밥을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 하루를 재워둔다. 그러면 양념이 밥알에 깊이 스며든 찬밥이 된다. 이 밥을 볶으면 독특한 맛이 난다. 쓰다 남은 찬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에게는 일도 그랬다. 최고가 되려면 기본부터 달라야 했다.

“설거지하는 그들이 바로 요리사의 가장 중요한 동료죠.”

좋은 문화와 바른 자세를 갖췄다면 성공으로 가는 마지막은 업무에 대한 이해다. 일식당에서 일하던 시절 정 사장은 늘 1등이었다. 요리를 더 잘하는 일본인 요리사도 있었지만 정작 손님은 정 사장이 가장 많았다.

비결은 주방 뒤편의 ‘백스테이지’였다. 일식집 주방이 앞자리에 앉은 손님과 요리로 대화하는 화려한 무대라면 양파를 자루 단위로 썰어내고, 설거지와 청소를 전담하는 취사준비실은 무대 뒤 백스테이지다. 이곳은 중남미 이민자들의 공간이다. 흰 가운을 입고 손님에게 ‘일본 요리의 정수’를 설명하는 근엄한 요리사들에게 비누거품과 양파냄새가 뒤범벅된 무대 뒤 직원들은 동료가 아니었다.

정 사장은 달랐다. 식당이 문을 닫으면 그는 가운을 벗고 주방 뒤편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가 끝나면 맥주 한 병씩 손에 들고 서툰 영어로 농담도 주고받았다.

“잘 닦인 접시, 크고 싱싱한 양파와 오이, 당근. 이런 게 제 경쟁력이었죠. 그런데도 일본인 요리사들은 가치사슬의 중요한 연결고리인 주방 뒤편을 보지 않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인 옆에 서있는 요리사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려고 했어요.”

지금도 그는 직원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가치사슬에서의 위치’를 알라고 강조한다. 업무분장에만 매몰돼 일을 하면 협력 대상이 헷갈리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는 마케팅과 재무담당이, 인사와 영업담당이 일상적으로 고민을 나눠야 회사가 ‘마음의 울타리’를 넘게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흰 가운을 벗고 주방 뒤로 걸어 들어갔던 것처럼.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정진우 사장은


△1966년 서울 출생 △1992년 미국 뉴욕 핀들레이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1993년 TSG네트웍스 △2000년 슬램덩크 네트웍스 △2002년 하이콤 정보통신 △2003년 피플소프트 IT전략 애널리스트 △2005년 데이터크래프트코리아 상무 △2008년 콤텍시스템 정보통신연구소 상무 △2010년∼현재 아카마이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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