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근의 멘탈 투자 강의]“난 투자에 소질있나봐” 화려한 착각의 함정

  • 입력 2009년 9월 14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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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없는 자기과신은 백해무익
‘처음처럼’ 겸손한 투자자세 중요

‘워비곤 호수’는 미국의 풍자작가 개리슨 케일러가 라디오 드라마의 배경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마을이다. 이 마을 여자들은 스스로 힘이 세다고 생각하고, 남자들은 다 잘생겼다고 믿으며 아이들도 자기가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별로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자신이 타인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심성이 더 좋고, 행운도 많이 따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유쾌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남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현상을 워비곤 호수 효과(Lake Wobegon effect)라고 한다.

요즘 주식시장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신용잔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투자심리가 좋아졌다는 뜻이다.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 투자심리도 좋다. 부동산 경매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있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투자심리가 살아난 것은 최근의 투자에서 투자자들이 실제 이익을 내고 있고, 또 향후 전망도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투자가 잘 될 때 꼭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절대 나의 투자실력을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강연을 할 때마다 청중에게 물어 본다. “여러분 중에서 자신이 비슷한 나이 또래 및 같은 성별의 평균보다 자동차 운전을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손을 드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보통 10%가 채 되지 않는다. 운전에 별로 관심이 없는 여성들도 손을 드는 비율이 15%가 안 된다. 적어도 30∼40%의 사람이 평균보다 못한다고 답해야 정상인데도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정말 대다수의 사람이 자동차 운전을 평균보다 잘하는 것일까? 이는 워비곤 효과처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과신(overconfidence) 심리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해도 내가 하면 당연히 잘 할 것으로 믿는 일종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다. 또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도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기과신 속에서 생활한다.

적당한 자기과신은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 어떤 일을 성취하려는 동기부여도 되고 그래서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해내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운동경기에서도 자기과신은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데 효과가 있다. 자기과신이 있어야 파이팅이 되고 그래서 우리보다 실력이 월등히 나은 팀을 이기기도 하는 것이다. 운동경기와 같은 ‘경쟁’에서의 자기과신은 상대방을 속이는 데에도 특별한 효과가 있다. 즉, 상대방이 나의 위장된 자신만만함에 위축돼 손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링 위에서 초반부터 위세를 떠는 격투기 선수가 일단 심리적 우위에 서고, 홈그라운드에서 열렬한 응원 속에 하는 축구시합이 더 유리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투자에서는 상대방이 없다는 점이 운동경기와 다르다. 굳이 경쟁을 한다면 다른 투자자들인데, 그들이 나의 자신만만한 기세에 눌려 투자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못한다고 해서 나의 수익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주식시장이나 개별 주식시세가 경쟁할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결국 투자에서는 나의 위세에 눌려 나의 능력을 높이 사 줄 주체는 없다. 자기과신이 투자할 때만큼은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처음 투자를 할 때 “배워가면서 해야지”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덧 시장이 좋아지면 웬만한 투자자산의 가격이 오르고, 뜻밖에 수익을 낸다. 이때 “아니, 내가 투자에 재능이 있나봐”라며 자기과신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투자하는 것마다 수익이 나고 간혹 투자 실패를 해도 그 원인을 알게 되면 나는 마치 ‘투자의 전문가’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가 투자의 전문가라면 나는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투자규모를 늘리거나 돈을 빌려서 하기도 한다. 심지어 주변 친지들의 돈을 맡아서 관리하는 일도 한다.

지금 내가 이런 상황이 아닌지 점검해 보자. 투자가 잘 될 때일수록 나의 초심을 다시 짚어 봐야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혹시 몇 번의 투자 성공으로 나 자신이 이미 자칭 ‘투자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닌지.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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