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현 교수의 디자인 읽기]CEO를 위한 디자인 감별법

  • 입력 2009년 7월 18일 03시 03분


그야말로 광고의 홍수, 디자인의 홍수 시대다. 소비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디자인을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디자인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터. 이때 세 가지만 기억하자. 보기 쉽게, 정확하게, 세련되게.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야말로 광고의 홍수, 디자인의 홍수 시대다. 소비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디자인을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디자인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터. 이때 세 가지만 기억하자. 보기 쉽게, 정확하게, 세련되게. 동아일보 자료 사진
쉽고… 정확하고… 세련되게…

디자인 안이 올라오면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영자를 가끔 만난다. 특히 광고, CI, 홈페이지, 패키지 디자인을 결정할 때 이런 어려움이 크다. 제품 디자인이라면 안에서 여러 절차를 거친 뒤인지라 경영자도 꽤 학습이 돼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외부 업체가 제작해 최종 프레젠테이션 때 처음 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대개 디자이너의 의견을 참고해 그때그때 제일 세련돼 보이는 것을 고를 수밖에 없다.

이런 때는 좋은 디자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만 알아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런 경험이 점차 쌓이면 판단력도 좋아질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말 그대로 소비자에게 브랜드나 제품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 소비자를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비슷한 상황 하나를 가정하자. 시끄러운 교실에서 반장인 당신이 내일 있을 소풍과 관련된 사항을 전하려 한다. 예컨대 “오전 8시까지 늦지 말고 준비물 잘 챙겨서 덕수궁 앞에 집결하라”는 것이라 하자.

3가지가 중요하다. 우선 반장의 말이 잘 들려야 한다. 큰 목소리로 말할 수도, 재미있는 몸짓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끈 후 작은 목소리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비자가 자사 광고나 패키지를 주목하게 하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광고가 소비자의 눈에 잘 보이도록 디자인돼 있는가가 한 가지 기준이 된다. 나아가 광고 자체는 잘 보이지만 광고의 핵심 내용에 소비자들이 쉽게 주목하겠는가 하는 2차적인 문제까지 살필 수 있다면 경영자의 디자인 안목은 상당한 수준이다.

둘째,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지다. 잘못 듣거나 감(減)해서 듣는 학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보 수신자들은 자신의 입장에 맞게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가공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30% 세일’이라고 하면 소비자들은 ‘개중에 30% 세일하는 물건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 스스로 감해서 듣는다. 또 케첩을 사려는 사람은 빨간색 광고에 민감하다. 흰색이 주가 되는 케첩 광고는 소비자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소홀해지기 쉬운 것이 브랜드 이미지다. 광고 내용에는 해당 제품과 브랜드에 관한 정보가 모두 포함된다. 제품은 일정한 수명이 있다. 그러므로 제품을 건너뛰어 일관되게 유지되는 디자인 요소가 있어야 광고 효과가 누적되고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다. 그 디자인 요소가 브랜드의 성격과 맞아떨어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므로 평소 경영자는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해둬야 한다.

셋째, 기분 좋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장이 짜증스럽고 퉁명하게 얘기하거나 건조한 내용만 전달하면 학생들은 잘 듣지 않고, 듣더라도 잊기 쉽다. 식상한 표현이나 촌스러운 디자인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선호도 높은 모델만 찾다 보니 자기 브랜드의 성격까지 무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국내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한 여성 모델이 2007년 한 해에 17개 기업의 광고에 등장했고 그 가운데에는 서로 경쟁관계인 기업에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출연한 경우도 있었다. 이래서는 브랜드 가치가 형성되지 않는다.

결국 얼마나 보기 쉽고 눈에 잘 보이는가, 얼마나 자기 브랜드의 성격과 제품에 관한 정보가 정확하게 표현돼 있는가, 얼마나 독창적이고 세련됐는가의 세 가지가 큰 평가항목이 된다. 듣고 나면 당연해 보이지만 결정 순간에는 놓치기 쉽고 어느 한 기준에 치우친 것을 선택하기 쉽다.

물론 이 세 기준이 디자인 결정의 전부는 아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기준을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전달할 내용은 쉽게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앞의 예에서 덕수궁 정문 앞으로 모이라고 하면 될 것을 대한문 앞에서 모이라고 하면 장소를 잊기 쉽다. 다만 경영자는 우선은 세 가지 기준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 기준은 시장 상황에 따라 어느 한 가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일반적 경영 판단에 해당하므로 경영자가 소신껏 정하면 된다. 다만 이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경영자가 이런 판단기준을 마음에 담아두고 디자인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디자이너들은 더 체계적으로 디자인을 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세 가지 질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경영자와 디자이너 모두에게 발전을 약속할 것이다.

지상현 한성대 교수·미디어디자인콘텐츠학부 psyj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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