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이것이 달랐다]동국제강

  • 입력 2009년 10월 10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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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제강이 9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 중앙기술연구소를 완공했다. 동국제강은 이 연구소를 통해 연구개발(R&D)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왼쪽에서 네 번째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김영철 사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장세욱 부사장(다섯 번째)도 참석했다. 사진 제공 동국제강
동국제강이 9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 중앙기술연구소를 완공했다. 동국제강은 이 연구소를 통해 연구개발(R&D)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왼쪽에서 네 번째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김영철 사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장세욱 부사장(다섯 번째)도 참석했다. 사진 제공 동국제강
“씨감자 아끼는 농부의 마음처럼” 아낌없는 철강투자 55년

9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과 김영철 사장 등 동국제강의 주요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380억 원을 투자한 중앙기술연구소 준공식 행사였다. 최신 연구개발(R&D) 설비를 갖춘 이 연구소를 통해 연구개발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이 동국제강의 미래 전략이다.

○ 도끼를 깎아 바늘을 만드는 각오로

이 연구소 준공을 계기로 동국제강은 향후 인천과 당진 공장에서 생산할 열가공제어압연(TMCP) 후판, 열처리 후판, 고장력 철근 등 제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또 브라질 고로(高爐) 사업 투자 등을 고려한 원천기술 확보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동국제강은 이를 위해 최첨단 설비인 열간 압연 파일럿플랜트 등을 연구소에 도입했다. 현재 40여 명인 연구 인력도 몇 년 안에 120명 이상으로 늘려 갈 계획이다.

장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로, 동국제강의 당면 과제는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고 개척하는 일”이라며 “고객이 동국제강의 제품을 찾게 하는 기술력을 확보해 달라”고 강조했다. 또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마부위침·磨斧爲針)는 각오를 해줄 것”을 연구원들에게 당부했다.

동국제강은 1954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간 철강 회사다. 1959년 국내 첫 와이어 로드(선재용 철강 반제품) 생산, 1963년 민간 기업 최초의 대규모 철강공장 건설, 1966년 국내 첫 전기로 제강 공장 준공, 1971년 국내 첫 후판 생산 등 ‘기술력’에서 업계를 선도해온 기업이기도 하다. 이날 중앙기술연구소 준공은 ‘기술의 철강 회사’ 이미지를 되찾겠다는 의지의 발로인 셈이다.

○ 노사 화합이 회사 발전의 원동력

동국제강의 설립연도는 1954년이지만 그 모태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故) 장경호 창업주가 1926년 대궁양행을 설립해 번 돈을 기반으로 해 훗날 동국제강을 세웠다. 장세주 회장은 장경호 창업주와 고 장상태 회장(2000년 작고)에 이은 3대 회장. 동국제강은 1956년 대성기업(현 동국통운) 인수를 시작으로 1972년 한국철강 한국강업 인수, 1985년 연합철강(현 유니온스틸) 인수 등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동국제강이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노사 화합’이다. 동국제강은 1994년 산업계 최초로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 없이 위기를 극복했다.

동국제강의 노사 관계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반 노동조합 결성을 앞두고 위장 취업 등으로 사내 갈등을 겪다 1987년 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이른바 ‘강성 노조’는 아니었다. 동국제강 노조의 파업은 1991년 7월 열흘 동안 진행된 ‘준법 파업’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이 파업은 생산 차질과 경영 악화라는 결과를 남겼고, 이를 계기로 노사 양측은 “파업은 회사와 구성원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1994년 노조는 결국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했고 회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사원아파트를 건립하는 등 복지 향상에 힘썼다. 또 매월 임원 회의에 노조위원장이 참석해 주요 경영 안건에도 노조의 의견을 반영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1994년 9000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5조6500억 원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8560억 원이다.

○ 씨감자는 먹지 않는 농부처럼…어려울수록 투자

동국제강은 또 끊임없는 투자로 결실을 일궈왔다. 시장 상황이 어려워도 투자만은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고 장상태 회장은 생전에 “100만 원만 있어도 설비에 투자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동국제강은 이런 투자를 “한겨울에도 씨감자는 먹지 않는 농부의 마음”에 비유했다. 철강 경기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천, 충남 당진, 경북 포항 사업장에 대규모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2012년 완료를 목표로 모두 4700억 원을 투자해 인천제강소를 친환경 최첨단 제강소로 바꾸고 있다. 노후 설비를 없애는 대신 최신 설비인 ECO-ARC 전기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설비의 제철 방식은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에 고철을 예열해 넣어 생산성과 에너지 효율은 높이면서도 이산화탄소와 분진 발생을 줄이는 방식이다. 동국제강은 이 투자를 통해 인천제강소를 지속가능 경영 철강 사업장의 모델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역과 융합한 친환경 철강 사업장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매년 150만 t 생산을 목표로 당진군에 짓고 있는 후판 공장 건설현장도 막바지 공사로 분주하다. 모두 9200억 원을 투입하는 이 공장은 이달 말 시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이 공장 건설로 동국제강은 내년 매출이 1조 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4월 브라질 합작 법인을 세우고 브라질에 최대 600만 t을 생산할 수 있는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는 등 해외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동국제강 약사

―1954년 동국제강 창립, 최초 민간 철강회사

―1959년 국내 최초로 와이어 로드

(선재용 철강 반제품) 생산

―1963년 부산 철강공장 건설

―1964년 국내 최초 용광로 설치 가동

―1966년 국내 최초 전기로 제강 공장 준공

―1971년 국내 최초로 후판 생산

―1972년 한국철강, 한국강업 인수

―1985년 연합철강, 국제종합기계,

국제통운 인수

―1994년 노조, 항구적 무파업 선언

―2004년 매출 3조 원 돌파

―2007년 브라질 고로 사업 진출 선언

―2008년 매출 5조 원 돌파

―2009년 중앙기술연구소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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