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유 사장은 아일랜드에 사는 한 교민에게 자신이 만든 바비큐 기계 1대를 팔기로 계약했다. 인터넷으로 유 사장의 바비큐 기계에 대해 알아봤다는 이 교민은 기계를 사용해 본 뒤 괜찮으면 추가로 구입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비록 1600만 원짜리 기계 1대를 판 것에 불과하지만, 유 사장은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가 개발한 바비큐 기계(원적외선 참숯 가마구이 기계)는 섭씨 400∼600도의 고열에서 짧은 시간에 고기를 굽는 기계다. 고기 맛이 나쁘지 않은 데다 굽는 시간도 짧아 식당의 회전율을 높일 수 있어 음식점 사이에서 제법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회사의 요즘 월 매출은 1억 원 정도. 비록 크지 않은 규모지만 유 사장에게는 ‘희망’을 주는 사업이다. 그는 1년 반 전 간암 판정을 받은 뒤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만큼 애착을 갖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첫 수출은 병원으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은 직후에 이뤄진 것이어서 기쁨은 두 배로 컸다.
그는 “내가 만든 기계를 설치한 음식점에서 매출이 올라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며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웃음 뒤에는 굴곡 많은 인생이 숨어 있다.
유 사장은 젊은 시절 정치인을 꿈꾸며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가 보좌하던 의원이 선거에서 패하자 진로를 바꾸기로 했다. 1993년 자동차 외장관리 사업에 도전했고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렸다. 3년 뒤에는 어린이 액세서리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 사업도 잘되자 외국 브랜드의 제품까지 수입하게 됐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터졌다.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빚이 눈 덩이처럼 불었다. 회사는 무너졌다.
그는 개인 재산을 처분해 부도난 회사의 뒷마무리를 했다. 이를 지켜본 지인들이 그의 책임감과 신용을 믿고 자금을 지원해줬다. 유 사장은 2000년 작은 치킨 집을 열어 재기했다. 사업 수완이 있어 장사는 잘해 나갔지만 2003년 조류 인플루엔자(AI)가 퍼지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해장국집으로 업종을 바꿔 다시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해장국은 겨울에는 꽤 장사가 잘됐는데 봄부터 매출이 떨어졌어요. 뭔가 다른 메뉴가 필요했지요.”
그는 궁리 끝에 바비큐 기계를 손수 만들었고 이를 이용해 ‘생족구이’라는 메뉴를 개발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기계를 만지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새 발명품에 특허출원도 했다.
장사가 잘되자 그의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유 사장은 그 길로 아예 음식사업을 접고 기계를 만드는 일에만 몰두하게 됐다. 주문 제작 방식인 그의 기계는 20만 원대 소형부터 2000만 원대 대형까지 음식점 규모에 맞춰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진다. 음식점 주인의 ‘쓸모’에 맞는 제품이어서 주문이 몰렸다. 대형 체인점에 납품할 만큼 대량 주문을 받기도 했다.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비로소 ‘안착’한 유 사장은 이 기계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는 “요즘 소비자들은 바비큐 기계로 초벌구이 해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이 때문에 올해는 매출이 2배 이상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사업실패 신용으로 극복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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