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망할땐 머리부터

  • 입력 2009년 3월 30일 03시 05분


일본의 젊은층이 사용하는 속어 중 하나로 ‘유니바레’라는 말이 있다. ‘유니’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캐주얼 의류브랜드 ‘유니클로’에서, ‘바레’는 들통 났다는 의미의 일본어 ‘바레루’에서 따온 말이다. 즉 유니바레란 유니클로를 입고 있는 사실이 들통 났다는 뜻이다.

이처럼 한때 일본 젊은이 사이에 입기가 창피한 브랜드로 통했던 유니클로가 최근 일본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거의 모든 일본의 유통업체가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유니클로만 유독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싸구려 브랜드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콧대 높은 일본의 백화점들도 이제는 유니클로에 “매장을 내달라”며 통사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유니클로(정식 기업명은 패스트리테일링)는 지난해 결산에서 매출액 5864억 엔(약 8조 원)에 영업이익 874억 엔으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와 실물경기 침체 여파로 대다수 기업의 주가가 곤두박질쳤지만 유니클로의 주가는 지난 한 해 동안 63%나 올랐다.

이 덕분에 유니클로의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야나이 다다시(柳井正·60) 회장은 일본의 쟁쟁한 거부(巨富)들을 제치고 미국 포브스가 선정하는 ‘일본 최고 부자’의 영예를 안았다.

유니바레라는 속어가 말해주듯 유니클로는 1990년대 중후반까지도 지방의 ‘촌스러운’ 무명 브랜드에 불과했다. 도쿄(東京) 도심인 하라주쿠(原宿)에 점포를 내 전국 브랜드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한 것은 창업 14년째인 1998년이다. 당시 패션잡지들은 유니클로의 상경(上京)에 코웃음을 쳤다. ‘시골에서 올라온 싸구려가게’ ‘아저씨 사이즈에 아줌마 색깔, 촌스러움의 극치’라는 노골적인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유니클로가 이런 비웃음을 통쾌하게 날려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야나이 회장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는 개성이 강렬한 기업가답게 톡톡 튀는 경영어록을 숱하게 쏟아내 왔다. 이런 것들이다.

“일일일책(一日一冊). 지금부터 경험하게 될 일은 모두 책에 쓰여 있다.”

실제로 야나이 회장은 독서를 매우 중시하는 경영자다. 스스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직접 책을 선물해가며 독서를 권장한다.

또 그는 “시장은 폭력적으로 변한다” “세상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늘 실패한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경영의 제1원칙으로 강조해 왔다.

야나이 회장은 한 강연에서 이런 말도 남겼다.

“매장은 고객을 위해 있고, 점원과 함께 번영하며, 점주(店主)와 함께 망한다.”

이 말은 대부분의 기업이 ‘망하지 않기 위해’ 경영을 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즉 위기는 매출이나 자금, 인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리더십에서 싹튼다는 점이다.

서양 격언에도 야나이 회장의 통찰과 비슷한 말이 있다.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The fish always stinks from the head down-wards).’

천광암 산업부 차장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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