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대중 코드로 변질된 ‘트럼프-김정은’ [김정안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2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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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밤, 전 세계는 ‘내가 아닌 내가 될 수 있는’ 다양한 변장과 함께 즐기는 축제, 할로윈으로 들썩입니다.

그 본고장인 미국은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할로윈 시즌 열풍입니다.

주택가 곳곳은 할로윈 관련 울긋불긋한 장식이 눈에 띄고,

대형 종합편의점 특별 코너엔 다양한 분장용 도구와 가면 등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해마다 바뀌는 다양한 디자인은 한 해 동안의 트렌드와 인기 캐릭터를 살펴볼 수 있는 유용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최근 대형 편의점 체인 할로윈 분장 특별코너를 찾은 기자는 올해 이 코너에 첫 선보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가면에 단연 주목했습니다.

이 곳서 만난 워싱턴 시민 캐롤씨는 김정은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기괴하다(creepy)"는 말을 반복하더군요. 나란히 놓여 있던 트럼프 가면을 함께 들어올리며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정말 둘 다 괴상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희화화된 ‘트럼프-김정은 콤비’는 비단 할로윈 분장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최근 미 지상파 인기 예능프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도 김정은 캐릭터가 등장했습니다. 가을 개편을 맞아 새롭게 선보인 이 코너의 첫 장면은 탄핵 국면에 전전긍긍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 위원장에 전화로 조언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 : 오~ 김 위원장!

김정은 위원장 역 : 헤이, 왓츠 업(무슨 일이죠)~~

트럼프 대통령 역 : 내부 고발자는 어떻게 처리해요?

김정은 위원장 역 : 당신 네 나라에도 바다가 있잖아요? 깊은 바닷 속으로 던져버려요!

트럼프 대통령 역 : 오, 그렇군요. 우리도 당신네 나라처럼 쿨~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풍자와 코믹함이 섞인 상상 속 대화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전화 통화만큼은 현실 속 이야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언급하며 해외 정상들과의 소통을 언급했는데 느닷없이 김 위원장과도 전화 통화한다 밝혔습니다. 한때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까지 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핫라인 소통까지 시사한 겁니다.

이런 정보를 흘리며(?) 그가 끊임없이 강조하고 싶은 건 과거 미국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메시지일 겁니다. 실제 자신만이 상당한 북미 협상 성과를 냈고 노벨 평화상감이라는 식의 발언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할로윈 분장부터 미 지상파 방송의 트럼프-김정은 코믹 예능 코너까지. 두 사람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선은 그 같은 평가와는 다른 듯 합니다.

세계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세 번의 북미 정상 간 만남에도 구체적인 비핵화는커녕 북한이 여전히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대중의 냉정한 평가가 숨어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관계를 민감한 외교적 사안이 아닌 대중적 코믹 코드로 보고 있다는 분석 또한 가능합니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만의 톱다운 방식 대북 외교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탄핵정국과 맞물려 이제 그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니냐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개인이 약화되면 그로 인해 개인화된 외교 또한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탄핵 국면 속 트럼프 식 북미 협상에 대한 최근 시사지 애틀랜틱의 분석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시사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김정안 채널A·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박사 수료)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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