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통일할 수 있다고 말하려면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4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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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후 교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4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후 교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통일 과정에 파생되는 문제들을 감당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들일까요?”

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SNUKOA) 소속 강서연 씨(서울대 중문과 18학번)가 올해 4월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너무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이어서 지난해 11월 런칭 이후 우아한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두 모아 보기로 했습니다. 6월 중순 40여 명의 전문가들에게 메일을 보낸 결과 모두 아홉 명이 구체적인 답변을 해 오셨습니다. 너무 소중한 의견들이라서 오늘 제가 종합해서 핵심을 전달해 드리고 25일부터 4일 동안 주제별 의견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우아한 사상 처음 있는 ‘전문가 콜라보’입니다.

먼저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는 이념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남북한은 서로 상대방의 국체를 인정하지 않고 수복과 통일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남북한을 두 나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진심으로 우리가 통일을 원한다면 국제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통일전략을 수립해 공개해야만 한다”며 “중국이 수십 년에 걸쳐 국제사회를 집요하게 설득하고 압박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얻어낸 것처럼 우리도 ‘원 코리아(One Korea)’ 원칙을 다시 재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준형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도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유도함에 있어 그 출발점은 국제적 차원에서 활용 가능한 ‘하나의 한국’(One Korea)론을 체계화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전수미 경희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변호사)도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를 대비해 1966년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규정한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남북한이 당사자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미리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표단이 지난해 1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관련 남북 고위급 실무회담 참석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표단이 지난해 1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관련 남북 고위급 실무회담 참석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이념적 근거가 수립되면 통일에 수반되는 과제별로 우리의 능력을 미리 보여주어 국제사회에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안세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민족의 저력과 시너지를 부각시키는 것”이라며 “북한 내 우수한 인력과 노동력이 남한의 자본 및 기술과 결합할 때 누릴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통일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북한의 경제 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 한국의 경제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재적 한국외대 교수는 다섯 가지의 과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습니다. ①북한이 보유하였던 생화학 무기 처리 ②북한 지역 안정화 ③북한의 핵처리 ④난민문제, 이행기 정의 실현 ⑤북한 인프라 개발, 북쪽 주민의 연금, 복지, 일자리 창출, 교육, 주거 문제 등입니다.(항목별 준비과제는 26일 우아한에 소개합니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우리가 한반도라는 좁은 지형 내부의 문제 뿐 아니라, 지역 문제, 특히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다양한 도전과제 해결에 적극 참여하고 때론 희생을 감수하고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과정에 주변국들의 안보우려 해소와 신뢰구축은 필수적입니다. 오경섭 연구위원은 “통일한국이 주변국들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고 역내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수미 교수도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와 같은 주변국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한 신뢰구축으로 남한주도의 통일이 각 국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구축에 이바지 할 거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9.19 남북군사합의 이행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 철수 감시초소(GP) 중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원형을 보존하기로 한 강원도 고성 GP의 모습. 이 GP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최초로 설치된 곳으로 북한 GP와의 
거리가 580m밖에 되지 않아 남북이 가장 가까이 대치하던 곳이다. 장비와 병력은 지난해 모두 철수했다. 사진공동취재단
9.19 남북군사합의 이행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 철수 감시초소(GP) 중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원형을 보존하기로 한 강원도 고성 GP의 모습. 이 GP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최초로 설치된 곳으로 북한 GP와의 거리가 580m밖에 되지 않아 남북이 가장 가까이 대치하던 곳이다. 장비와 병력은 지난해 모두 철수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 모든 과정을 미리 보여준 사례가 바로 독일의 통일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일 통일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국가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고 북한주민들에게 매력적인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상국 독일 국립베를린자유대 교수는 “한반도 통일이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주변국에게 현 분단 상황보다는 통일이 그들에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공해야 한다”며 “독일의 경우 강력한 경제력과 뛰어난 외교역량이 바탕이 된 가운데 통일을 하겠다는 양국 국민의 지지와 결단이 강대국을 설득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수미 교수는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 예상보다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어 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과 자체의 취약성으로 인해 붕괴할 것이라는 시각이 공존한다”며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서 준비해야 하며 찾아올 수 있는 통일의 기회를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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