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간호섭의 패션 談談]〈29〉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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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용호상박. 서로 대등한 두 상대가 승부를 겨룬다는 말이지요. 이 세상에는 라이벌이 존재합니다. 라이벌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최고의 창조물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라이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시민들은 두 예술가의 경쟁을 보고 싶어 했고 메디치 가문은 이들에게 베키오궁의 두 벽에 벽화를 그리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빅매치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1960년대 워너브러더스 영화사는 영화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서 배우 벳 데이비스와 조앤 크로퍼드의 라이벌 관계를 홍보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크로퍼드의 남편이 펩시콜라의 사장인 것을 데이비스가 비꼬며 촬영장에 코카콜라 자판기를 가져다 놓았다’, ‘데이비스가 자루로 시체를 옮기는 장면에 크로퍼드가 무거운 물건을 몰래 넣었다’ 등 가십 기사들을 내보냈습니다.

또 다른 라이벌인 두 패션 디자이너도 유명합니다. 비오네와 샤넬입니다. 샤넬에 비해 덜 알려진 비오네는 염색하지 않은 머리에 수수한 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견습생과 재단사로 오래 일하면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의상실을 열었습니다. 반면 샤넬은 사교계의 여왕이었습니다. 비오네는 외모에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자신의 의상이 도용되는 것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해서 화보 촬영이나 인터뷰를 조심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죠. 반면 샤넬은 여행을 가건 파티를 가건 인터뷰를 하건 그녀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사진을 남겼습니다. 그녀가 입은 의상은 히트 아이템이었고 바로 샤넬 스타일이었습니다.

색상 선택도 둘은 크게 달랐습니다. 비오네는 고전적이며 우아한 흰색, 베이지색을 선택해 부드러운 인체의 미를 구현해 냈습니다. ‘바이어스 커팅’이라는 사선 재단(裁斷)을 통해 탄생한 그녀의 의상들은 그리스 여신의 조각상 같았습니다. 샤넬은 장례식장에서나 입는 블랙을 패션 역사에서 가장 세련된 색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모험을 감수하는 저돌적인 방식으로 블랙을 샤넬의 색으로 만들었습니다. 직물 선택에서도 비오네는 부드러운 크레프 드 신이라는 실크를 쓴 반면 샤넬은 거칠고 투박한 트위드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두 라이벌은 모두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크레프 드 신이라는 얇은 실크는 비오네 전까지는 고급 의상의 안감에만 쓰이는 직물이었습니다. 트위드라는 두꺼운 직물도 샤넬 전까지는 여성복에 사용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했던, 작업복에 쓰이는 직물이었습니다. 몇 세기 동안 허리를 조였던 코르셋에서 두 라이벌은 여성을 해방시켰습니다. 비오네는 심지와 어깨 패드 등 그 어떤 부자재도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인체미를 코르셋 없이 표현했습니다. 샤넬은 직선적이고 단순한 실루엣으로 코르셋 없이 여성미를 부각시켰습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기호가 다를지언정 추구하는 아름다움만큼은 같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라이벌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라이벌이 존재하기에 삶에는 창조가 넘칩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라이벌#비오네#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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