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창간독자, 나는 필자로… 동아와 代이은 동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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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아일보]<16>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의 할아버지는 독립을 바라는 마음으로 동아일보를 창간 당시부터 구독한 열혈 독자였다. 50년 전 빛바랜 사진 속 김 부회장(왼쪽)이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과 밝게 웃고 있다. 김경준 부회장 제공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의 할아버지는 독립을 바라는 마음으로 동아일보를 창간 당시부터 구독한 열혈 독자였다. 50년 전 빛바랜 사진 속 김 부회장(왼쪽)이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과 밝게 웃고 있다. 김경준 부회장 제공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동아일보는 가까이 있었다.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께서 동아일보 창간 독자라는 자부심으로 평생 구독하셨기 때문이다. 평안북도 선천에 사시다가 공산 치하를 피해 6·25전쟁, 1·4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오신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동아일보를 자연히 접하면서 자랐다.

한글을 깨친 후에는 뜻도 모르면서 신문의 글자를 곧잘 읽어서 할아버지를 기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만화 고바우 영감 캐릭터를 보면 할아버지가 연상되고, 초등학교 시절의 동아일보 백지광고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중학생 시절 할아버지께 동아일보 창간 독자가 된 연유를 여쭌 적이 있다. 20대 청년 시절인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고 민족적 자각이 높아지면서 창간된 동아일보라 그야말로 독립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독자가 됐다고 하셨다. 당시 신문 구독이 쉽지 않았다고 덧붙이셨는데,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구독료도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이었고 민족지 구독자는 일제 경찰이 주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을에 한두 부 배달되는 귀한 신문은 마을 어른들이 돌려 읽는 정보의 오아시스였다. 일제의 검열로 비록 신문 지면에는 조선인 폭도를 의미하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표현되어 있어도 행간의 뜻을 이해하여 ‘조선독립지사’로 해석하며 마음으로 성원했다고 할아버지는 회고하셨다.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이란 민족적 쾌거를 모두 기뻐했지만, 일장기 말소 사건을 계기로 동아일보가 폐간되면서 평안도 고향에서의 인연은 막을 내렸다. 남한으로 내려와 맨주먹으로 생활 터전을 일구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동아일보를 구독하셨다는 할아버지께서는 오래전 세상을 떠나셨다. 하지만 그 인연은 내게로 이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신문은 언제나 가까이 있었다. 동아일보를 비롯하여 주요 일간지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관점을 넓혀 나갔고, 내 나름대로 신문과 잡지를 효과적으로 읽는 노하우도 생겼다. 컨설팅 분야에 종사하면서 경험을 정리하여 2003년에 생애 최초로 책을 출간했다. 부족하나마 저자가 되어서 보람을 느끼고 있을 때 동아일보 기자의 연락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신문 지면에 인쇄된 내 사진이 곁들여진 기사를 보면서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를 생각했었다.

이후 가끔씩 동아일보와 관련 잡지에 기고를 하면서 지인들이 생겨났다. 2007년 가을 중견급 기자의 연락으로 자리를 함께했는데 알고 봤더니 잡지 창간을 위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미팅이었다. 우리나라도 10대 무역국가로 성장했고, 글로벌 우량 기업들도 배출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기업경영 전반에 대한 최신 지식을 전달하는 경영 전문 잡지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김경준 부회장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창간 당시 자문 역할을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경준 부회장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창간 당시 자문 역할을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후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경영 잡지로서 명성이 높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벤치마킹했다. 콘텐츠의 기본 개념을 잡고 국내 필진을 물색하는 작업은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다. 온라인 매체의 성장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종이 잡지의 창간이 무모하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계획은 진행되어 2008년 3월 ‘동아비즈니스리뷰’ 1호가 나왔다. 경영 분야의 수준 높은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이 잡지에 나는 필자로도 참여했다. 종이 잡지로 출발해 축적된 양질의 지식을 기반으로 온·오프 교육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가는 동아비즈니스리뷰를 보면 창간 과정에서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절로 든다.

때로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평범한 일상적 행동이라도 오랜 기간 꾸준히 하면 습관이 되고 전통이 된다. 하물며 매일매일의 세상사를 압축하는 신문이 100년 가까이 발간되었다는 자체가 독자와 함께 시간과 공간을 호흡해 온 역사다. 가족사로는 창간 독자였던 북한 출신 할아버지의 남한 출생 손자가 필자로 인연이 깊어지는 기간이었다. 창간 당시의 전근대적 식민지는 변방의 빈곤국을 거쳐 풍요로운 선진국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아일보는 언제나 중심에 있었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나와 동아일보의 스토리가 극적인 드라마는 아니다. 그러나 나와 동아일보는 오랜 기간 숙성된 된장처럼 100년에 가까운 기간 대를 이어 일상을 함께하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공유한 동반자 관계다. 지면에 소개되지 않은 수많은 독자들이 동아일보와 이룬 인연과 추억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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