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통합 바통 이을 대통령 자문기구엔 유아교육 전문가 ‘0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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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안 어린이집 공존을 향해]<4> 갈길 먼 ‘유치원-어린이집 통합’

경남 거제시 둔덕면 숭덕초등학교에 설치된 병설유치원과 어린이집 소속 아이들이 함께 야외활동을 하는 모습. 이곳은 유치원-어린이집 통합(유보 통합) 시범학교로 지난해 10월 정부가 어린이집 미설치 지역에서 만 0∼2세 영아의 유치원 취원을 허용하면서 탄생했다. 사진출처 숭덕초교 홈페이지
경남 거제시 둔덕면 숭덕초등학교에 설치된 병설유치원과 어린이집 소속 아이들이 함께 야외활동을 하는 모습. 이곳은 유치원-어린이집 통합(유보 통합) 시범학교로 지난해 10월 정부가 어린이집 미설치 지역에서 만 0∼2세 영아의 유치원 취원을 허용하면서 탄생했다. 사진출처 숭덕초교 홈페이지
지난해 10월 경남 거제시 둔덕면 숭덕초교는 유치원-어린이집(유보) 통합 첫 시범학교로 지정됐다. 학교 건물 1층에는 병설유치원, 바로 앞에는 어린이집이 들어섰다. 유치원에는 만 3∼5세 29명, 어린이집에는 만 0∼2세 12명이 다니며 일부 프로그램을 공유한다. 정부가 어린이집이 없는 지역 만 0∼2세 영아의 유치원 취원을 허용하면서 탄생한 ‘유보 통합 실험장’인 셈이다.

1년 2개월간 시범운영이 이뤄졌지만 오히려 유보 통합이 얼마나 험난한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초 유보 통합 시범학교를 8곳까지 늘릴 계획이었지만 단 1곳도 늘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두 자녀를 한 곳에 모인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원시켜 편리하다”는 반응이지만, 학교는 현장의 어려움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학교 관계자는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와 거제시, 유치원은 경남도교육청 관할로 관리 주체가 다르고, 운영 주체와 교사도 다르다”며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이 공간만 나눠 가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시범학교 지정에 반대했을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 대통령자문기구에 영유아교육 전문가 0명

학교 안 어린이집이 표류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유보 분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는 교육부 소관이 아닌 어린이집에 교문 열어주기를 꺼린다. 어렵사리 학교 안에 어린이집이 들어선다 해도 소관 부처부터 운영 주체, 교사 등이 나뉘어 있다 보니 현장에서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긴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2014년 2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꾸려진 영유아교육보육 통합추진단(유보통합추진단)은 내년 1월로 4년 임기가 끝난다. 지난 정부가 유보 통합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발족한 추진단은 당초 올해 말까지 3단계 유보 통합 과제를 완료할 계획이었다. 추진단 관계자는 17일 본보에 “연장 이야기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유보 통합을 선도할 기구 자체가 없어질 상황에 처한 것이다.

만약 이대로 해체된다면 유보 통합 논의는 13일 발족한 대통령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로 넘어간다. 문제는 13일 공개된 국가교육회의의 민간위원·위원장 12명 가운데 유아교육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교수 7명과 교육현장 관계자 5명으로 구성된 위원 중 3명은 교육학 전공자이지만 모두 초등 이상 교육 전문가들이고 나머지는 경제학, 회계학 등 다른 학과 전공이었다.

국가교육회의 관계자는 “회의 의제는 위원들이 회의를 거쳐 선정하며 외부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유보 통합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컨트롤타워를 잃은 유보 통합이 더욱 지체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 통합 논의할 ‘컨트롤타워’ 있어야


“순서가 거꾸로 됐어요.” 위성순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장은 “부처의 권한을 통합하고 이후 과제들이 이 업무를 총괄하는 기구 감독하에 진행됐어야 하는데 통합의 마지막 단계가 부처(권한) 통합이란 게 말이 되느냐”며 이렇게 말했다. 이일주 공주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지난 정부 때 정보공시·평가체계 기반 구축→규제 및 운영 환경 등 통합안 마련→행정부처와 교사 양성 체계 통합 순으로 계획을 짰다”며 “일단 담당 부처를 일원화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통합됐을 텐데 결국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문턱이란 △교육부와 복지부로 이원화된 권한 통합 △두 기관 교사 간 격차 해소 △재원 마련과 재정 통합 등이다. 사실상 아주 크고 어려운 과제들이다.

1997년 김영삼 정권 때부터 제기된 유보 통합 문제가 21년째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부처 권한 통합과 교사 간 격차 해소라는 숙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공통 교육·보육(누리)과정과 지원 체계를 마련했고 지난 정부 때는 추진단을 중심으로 지불카드, 정보공시체계, 재무회계규칙, 시설규정 등이 통합됐다. 하지만 부처 권한 일원화는 최종과제로 미뤄졌다.

이번 정부는 공식적으로 유보 통합을 내세우는 대신 교사 간 격차 해소에 방점을 찍었다. 7월 발표된 국정과제에는 어린이집 교사 전문성 강화와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현재 최소 관련학과 전문대 이상을 졸업하고 준교사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유치원 교사와 달리 어린이집 교사는 고졸에 관련 자격증만 취득해도 되기 때문에 어린이집 교사의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처우개선비를 인상한다는 내용이다.

이정욱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교사 자격 및 양성 체제의 일원화에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다”며 “유보 통합이 지지부진한 이유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보 통합 과정 비용으로, 매년 인건비만 추가로 2조 원이 필요하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서로 다른 교사 양성 체계와 처우를 균일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보통 유치원 1개(6, 7학급) 짓는 데 건물비만 50억 원가량 소요되고 유치원을 지을 땅을 사려면 대도시에서는 100억 원 가까이 든다”며 “최대 수십조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유보 통합 교부금을 만들거나 내국세, 교육세 일정 비율을 유보 통합 재원으로 돌려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장기적인 재정 계획을 만들자면 결국 유보 통합을 지속적으로 이끌 추진력이 요구된다. 부처 간, 업계 간 이해관계가 첨예해 통합 당사자에게만 맡겨서는 통합 논의를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통합 논의를 꾸준히 이어갈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부처를 넘어서 함께 계속 논의할 기구가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김윤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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