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順命] 권노갑 회고록〈24〉감옥서 만난 영화배우 신성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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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 고문님, 잠이 안옵니다… 마사지 좀 해주십시오”

○날마다 마사지

1950년대 후반 목포여고 영어 교사 시절의 권노갑. 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4년간의 영어교사 생활을 접고 상경해 DJ를 돕는다. 동아일보DB
1950년대 후반 목포여고 영어 교사 시절의 권노갑. 홀어머니가 돌아가시자 4년간의 영어교사 생활을 접고 상경해 DJ를 돕는다. 동아일보DB
내가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가깝게 지낸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강신성일 씨가 있었다. 그 유명한 ‘신성일’이다.

3수 끝에 국회의원이 된 그는 2005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 연장과 관련해 옥외광고물 업자로부터 1억87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되어 나와 옥중생활을 같이 하게 되었다.

강 의원은 출감하면 정치는 그만둘 생각이라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이 되면 영화배우의 인기에다 권력의 날개를 하나 더 다는 셈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해보니 아무것도 아니데요. 오히려 과거보다 더 위축됐어요. 정당인으로서의 의무를 해야 하고, 간 다 빼주면서 지역유권자 기분에 맞춰야 되고. 이건 내 생리에 맞지 않은 것이었어요.”

누구나 자기의 전문분야와 영역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누구 편에 줄서기를 하고 그래야 공천을 받으니 정말 하기 싫었습니다. 3류 짓이었습니다. 상생 정치를 자주 떠들지만 정치인들 3분의 2가 법률을 공부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서로 잘 지내다가도 자구(字句) 하나만 틀리면 원수처럼 돌아서버립디다. 세상사의 묘리를 모르고 인격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상인들은 오늘 당장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내일 이득을 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서로 주고받을 줄도 알아요. 그러니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을 하다가 부도도 겪고 좌절도 해보고 인생 쓴맛도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현실정치에는 분명 강 의원이 지적하는 그런 부분도 있다. 조직을 중시해야 하는 정치는 예술가나 연예인에게는 생리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분야일지도 모른다.

은막의 대스타였던 그로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한도 컸을 것이다.

아마도 그 회한을 품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의 하나로 그는 운동을 택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칠십 가까운 나이인데도 시간만 나면 콘크리트로 만든 역기를 들고, 골프채 대신 3m짜리 빗자루로 하루에 20∼30번씩 스윙 연습을 하곤 했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이면 반드시 냉수로 샤워를 했다. 그런 탓에 그의 머리칼은 은빛이었지만 가슴이나 팔뚝은 30대 청년처럼 근육이 잡힌 건장한 몸을 유지했다.

그러나 밤에는 회한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좀 해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그의 몸을 정성껏 마사지하여 풀어주곤 했다. 지난날 내가 권투선수를 키울 때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합을 앞둔 선수들은 긴장한 탓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그럴 때 온 몸을 마사지해주면 푸근히 잠들곤 했다. 운동 끝나고 목욕을 한 후 그는 내게 와서 마사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과묵하고 담백한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고집은 있지만 소신이 뚜렷하고 남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경상도 사람인데도 서울에서 오래 살아 그런지 거의 표준말을 사용했다.

그는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도 많이 읽었다. 주로 역사서나 인생철학 같은 책들이었는데, 그가 옥중에서 2년 동안 읽은 책이 트럭 한 대분은 되는 것 같았다.

“이런데 안 들어왔으면 어떻게 이런 책을 보았겠습니까?”

○영어공부

내가 옥중에서 열중한 것은 영어 공부였는데, 날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서 뉴스위크지나 원서를 읽고 있는 나를 보고 강 의원이 물었다.

“권 고문님은 왜 그렇게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십니까?”

“출감하면 동시통역사가 되어 보려고.”

“나도 영어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공부하면 됩니까?”

“영어는 무조건 외워야지.”

그 후 영어공부에 취미를 갖게 된 강 의원은 내가 권한 영한 대역의 ‘잠언’을 화장실 같은 데 갖고 가서 보다가 문장을 외워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고는 내게 그 문장을 외워보였다. 그러면 나는 그의 발음을 고쳐주고 문법적으로 어려운 문장을 해석도 해주고 했다.

3·1절이 가까워오자 강 의원이 내게 물었다.

“이번에 출감하게 되십니까?”

“그럴 것 같소.”

“나는 한 해를 더 지내야 풀려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나도 앞으로 1년 동안 영어를 공부해볼 생각인데 좀 도와주십시오.”

나는 출감 이틀 전에 ‘로마의 휴일’ 영어 시나리오 대본을 그에게 주었다.

“그 대본엔 고급영어와 대중영어, 엉터리 영어가 섞여 있으니 한번 열심히 공부해 보시오.”

그런데 이틀 후 강 의원은 나와 함께 특사로 풀려났다.

함께 출감한 강 의원은 교정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그동안 공짜 밥 잘 얻어먹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정치에 입문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이 계속 남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에는 감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경험을 했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장부다움.

아마도 그것이 강신성일 의원의 지향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어 본 강신성일 의원은 정말 남자다웠다.  

▼ 김대중의 영어, 권노갑의 영어 ▼

“succeed 뒤엔 to를 쓰면 안됩니다”… 권노갑 지적에 DJ는 “…응, 알았네”


권노갑 고문의 어릴 적 꿈은 국가대표 권투선수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라는 걸 밟아봤던, 1948년의 바로 그 런던 올림픽에 서는 것이었다.

권투를 시작한 건 식민지배 시절 일본인 학생들한테 얻어맞은 기억 때문이었다. 권노갑은 전라도 대표 선수까지 올라가는 데는 성공했다. 당시 함께 권투를 했던 친구가 한국 최초의 동양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강세철이었다. 아들 허버트 강과 함께 ‘부자(父子) 철권’으로 유명했던 그 강세철이다. 권노갑은 훗날 강세철이 중요한 시합을 할 때면 세컨드를 봐주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는 데 실패하자 권노갑은 대학 진학 준비를 위해 영어책부터 잡았다. 평생에 걸친 ‘영어 사랑’의 시작이었다.

영어 공부에 얽힌 에피소드가 유난히 많은 것도 권노갑과 DJ의 닮은 점이었다. 다만 DJ는 공부가 늦었다. 권노갑의 기억. “김대중 대통령은 1962년 이희호 여사와 결혼한 직후부터 공부를 시작했는데 당시 서울 종로 YMCA에서 딕슨 Ⅰ,Ⅱ,Ⅲ 강의를 들었다.”

이희호는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램버스 대학과 스칼릿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는 귀국 후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맡고 있던, 당대 최고의 여성 엘리트였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면 정말 0.0001% 안에 드는 스펙의 소유자였다. DJ의 영어 공부는 아마 ‘이희호의 수준’에 맞추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미국 망명 중이던 1983년, ABC 방송의 ‘나이트 라인’에 출연했던 이야기는 아직도 DJ 지지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한다. 출연요청은 받았지만 DJ는 망설였다. 영어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부를 지지하는 한국 측 토론자는 영어에 능통한 앵커 출신의 봉두완 국회 외무위원장이었다. 토론은 DJ에게 유리하게 흘렀다. 그런데 끝날 무렵 상대편에서 “지금까지 김대중 씨가 말한 인권유린은 모두 박정희 정권 때의 일”이라고 호도했다.

한국 사정을 모르는 미국 시청자들에겐 매우 효과적인 ‘끝내기 펀치’였다.

“웨이트(wait)!, 웨이트(wait)!” 토론이 그대로 끝나려 하자 DJ가 황급하게 외쳤다. “내 얘기는 미국 국무부의 1982년 ‘인권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다. 당신네 정부가 보증한 말이다.” 토론은 DJ의 역전승이었다.

“내가 그렇게라도 영어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6년여의 옥중생활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이라고 생각한다. ‘삼위일체’를 비롯한 영문법 책 여러 권을 몇 번씩 읽었다. 내가 감옥에 있지 않았더라면 어찌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 감히 영어를 공부했겠는가.”(김대중 자서전)

그래도 목포여고 영어교사 출신인 권노갑의 눈에는 고쳐야 할 ‘문법적 오류’가 많았다. DJ는 종종 “succeed to∼”라고 말했다.

권노갑=“succeed 뒤에 ‘to infinitive(부정사)’를 쓰면 안 됩니다. succeed in+동명사로 사용해야 문법적으로 맞습니다.”

DJ=“(심드렁한 어조로) 응, 알았네.”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권노갑#김대중#신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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