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는 정치인]<5>23개월째 야인생활 오세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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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침묵이 금이다… “서울시장 출마? 그럴 일 없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1년 8월 사퇴 이후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12일 본보 기자에게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정식 인터뷰와 사진 취재를 극구 사양했다. 그 대신 그는 이날 오후 자택이 있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공원에서 사색하는 모습을 찍어 보내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제공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1년 8월 사퇴 이후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12일 본보 기자에게 “반성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정식 인터뷰와 사진 취재를 극구 사양했다. 그 대신 그는 이날 오후 자택이 있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공원에서 사색하는 모습을 찍어 보내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제공
“전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단호하게 얘기했다. 12일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에서 만난 오 전 시장은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한 뒤 “당분간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잘라 말했다.

그는 이날 “스스로 그만두고 나온 자리를 또 하겠다고 하면 국민이 어떻게 보겠느냐. (서울시장 중도 사퇴는) 유권자들과 서울시민께 일단 큰 죄를 지은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자숙하고 있어야 한다”고 불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오 전 시장은 계속된 질문에 “아휴, 지금은 반성하는 기간인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아직 뚜렷하게 무엇을 하겠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는 아니었다. 다만 “(민주당 소속) 박원순 시장의 임기가 끝나는 기간(내년 6월)까지는 자숙기간으로 설정해 놨다”고 했다. 자신의 재선 임기였던 2014년 6월까지는 가급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서울 시민과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판단한 듯했다.

이는 뒤집어 해석하면 내년 6월 이후에는 정계 복귀를 하겠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한 측근 인사는 “복귀 방법은 2011년 4월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당선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사례처럼 새누리당에서 당선이 어려운 지역구에 자진 출마해 살아서 돌아오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내년 10월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이를 염두에 두겠다는 뉘앙스였다.

2년 전만 해도 오 전 시장은 민주당이 주장한 전면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1년 1월 주민투표를 제안한 그는 기자회견에서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33.3%에 못 미쳐 투표가 무산되거나 개표에서 (서울시가 내놓은 ‘단계적 무상급식’ 방안이)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할 경우 시장직을 걸고 책임을 지겠다”고 승부수까지 던졌다. 그러나 주민투표 최종 투표율은 25.7%에 그쳐 투표함조차 열지 못했고, 그는 재선 1년여 만인 그해 8월 스스로 물러나야 했다. 그로부터 23개월째 측근들을 통해 주요 근황이 간간이 전해질 뿐 그는 정치 재개 여부 등에 대해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시장 중도 사퇴 후 그는 대선과 총선 등에서 패배한 다른 거물급 정치인들처럼 외국을 다녀왔다. 산행 중 발병한 허리 디스크 치료를 받은 뒤 지난해 5월 영국 킹스칼리지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 자격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중국 상하이(上海)로 넘어가선 어학 공부를 했다. 대선 직전인 지난해 12월 14일에는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는 측근의 조언을 받아들여 귀국했지만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현재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와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지금은 여름방학이라 3월부터 강의했던 ‘고급(최고위) 도시행정 세미나’ 수업은 하지 않지만 거의 매일 한양대로 나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귀국한 뒤 일주일에 한 번 강의를 하는 조건으로 연구실을 얻은 것이다.

요즘 그는 이곳에서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 동서양 고전(古典)을 다시 탐독하고 있다. 이틀에 한 권을 읽을 정도로 독서량도 많다. 그는 최근 한 측근에게 “젊었을 때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으니 느끼는 정도가 다르더라”고 했다고 한다. 이 측근은 “2000년 17대 국회에 입성한 뒤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정치쇄신의 아이콘으로 불렸고, 2006년과 2010년 서울시장 재선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승승장구했지만 이제는 사퇴 이후 ‘평범한 서울시민’으로 생활하며 스스로 겸손해졌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3월부터는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오 전 시장은 소송은 직접 맡지 않고 고문 역할을 하는데 초급 변호사 수준인 400여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자리도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는 후문이다. 귀국한 뒤 자신의 카니발 승용차를 직접 몰고 다니자 측근들이 사고 위험성 등을 이유로 최소한 운전기사는 있어야 한다고 조언을 했고, 당시 재정적 여력이 되지 않자 운전기사의 월급을 주기 위해 고문변호사로 등록했다는 것이다.

운전기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하루는 특별할 것이 없다. 오전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난 뒤 스트레칭 등 운동을 하고, 9시까지 한양대로 출근한다. 오후 6시까지 책을 읽고 저녁 약속이 없으면 서울 광진구 자양동 자택으로 향한다. 퇴근 후에는 자택 인근에서 빨리 걷기 운동인 ‘파워 워킹’을 자주 하고, 주말에는 지인들과 가끔 테니스를 친다. 정치인들은 가급적 만나지 않는다. 다만 한 달 전쯤 18대 국회 때 새누리당 초선이었던 몇몇 전현직 의원들과의 자리에선 박원순 시장이 자신의 재임 중 정책을 뒤집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안팎에선 오 전 시장이 정계 복귀를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우선 대선 1년여를 앞두고 당시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해 친이(친이명박)계의 도움을 받아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연계했다’는 일각의 관측을 해소하는 일이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오 전 시장이 주민투표를 10여 일 앞두고 대선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당내에서는 여전히 주민투표 제안 자체를 불순한 의도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어젠다 발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 측근은 “젊고 참신했던 정치쇄신의 이미지는 이제 많이 흐려졌기 때문에 ‘오세훈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컴백할 수 있다”며 “아예 포퓰리즘에 맞선 ‘진정한 서민복지’를 들고 나오든지 환경, 외교 분야 등에서 새로운 어젠다를 내놓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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