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이래야 성공한다]<9> 대야관계-유인태 민주 의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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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 득세하면… 타협-상생 설 곳 없고 국회도 힘 잃어”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민주통합당 유인태 의원은 “‘내 것 100개 다 따라와’ 하면 타협과 상생은 없다”고 강조했다. 걸쭉한 입담으로 ‘엽기 수석’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그에게 ‘발언이 지나치게 점잖다’고 하자 “옛날에는 욕 좀 했는데 제목으로 뽑힐까봐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민주통합당 유인태 의원은 “‘내 것 100개 다 따라와’ 하면 타협과 상생은 없다”고 강조했다. 걸쭉한 입담으로 ‘엽기 수석’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그에게 ‘발언이 지나치게 점잖다’고 하자 “옛날에는 욕 좀 했는데 제목으로 뽑힐까봐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1974년 4월 3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지하조직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는 요지의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민청학련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4호도 공포됐다. 며칠 뒤인 4월 14일, 서울대생 유인태는 남산 중앙정보부 분실로 끌려갔고 3개월간의 수사 후 사형 선고(7월 9일)를 받았다. 기적적으로 감형·석방돼 교수형은 면했지만 4년 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사형 선고 38년 만인 지난해 2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민주통합당 유인태 의원(65·3선)의 이야기다. 》

유 의원은 1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아버지 시대의 피해자들을 품어주고 보듬어주는 게 역사적 화해, 국민대통합으로 가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길 바라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만 해도 ‘일자(一字)도 못 고친다’는 자세로는 상황이 안 좋게 굴러갈 수밖에 없다”며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른바 ‘보수 언론’으로 분류되는 매체는 읽지도 않는다는 그는 인터뷰 주제를 듣고는 주저하지 않고 응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 때부터 화해, 국민대통합을 강조했는데….

“화해는 진실이 밝혀진 후에 되는 거지 진실을 덮으면 될 수 없다. 아직도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는 민초(民草)들이 많다. 가령 박정희 정권 때 간첩사건에 연루된 납북 어부들이 있다. 북한은 월경(越境)한 어부들을 끌고 가 치료해준 뒤 돌려보냈다. 납북 어부들이 술을 마시다 ‘북한이 살기가 더 낫더라’고 하면 ‘북한의 선전 지령을 따랐다’며 간첩으로 만들었다. 간첩을 많이 잡으면 특진이 되니까 억울한 간첩들이 양산됐다. 이런 진실들이 밝혀져야 진짜 화해, 통합이 이뤄질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면….

“과거사, 진실 규명을 전담하는 기구를 만드는 게 좋겠다. 이명박 정부 때 활동이 종료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무수석 출신이다. 정무수석의 자질을 소개한다면….

“국회와 대통령의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여야동수라고 여기고 이견을 타협해가야해. 비서관이라는 건 대통령 의지를 돌리려 하면 그날로 잘리거든. 또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어야 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돈이나 정보 같은 사탕이 없으니까 ‘그래도 저게 대통령이랑 아주 가까워’ 이래야 누가 만나기라도 해주지. 그런데 정부조직개편안 관련해 우리 당 협상대표단이 (박 당선인을) ‘완전 절벽’이라고 하던데…. 당선인이 ‘내가 하는 대로 따라와’ 이런 식이면 뭐 정무수석이 필요한가 싶은데….”

―2008년 초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정부조직개편을 야당과 상의했나….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인데…. 당선인 시절 이 대통령이 당시 손학규 대표한테 전화를 걸어서 ‘협상대표를 지명해 달라’고 했다. 이 당선인 측에선 이재오 의원, 우리 쪽에서는 국회 행정자치위원장이었던 내가 지명이 됐다. 원내대표 간 협상 테이블과는 별개로 우리는 우리대로 거의 한 달간 매일 밤 10시 모 호텔 지하 맥줏집에서 만나 줄다리기를 했다. 내가 안을 제시하면 이 의원이 그 자리에서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합의를 이뤄냈다. (이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며 장관 수 줄이는 데 집착을 했다. 통일부 여성부는 우리가 설득해 살려냈다.”

―이정현 정무수석 내정자를 평가한다면….

“누가 봐도 박 당선인의 최측근이고 당료 생활을 오래 했다. 국회의원도 거쳤다. 정무수석으로서의 커리어는 다 갖췄다. 잘 할 거다.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데 주변 얘기를 들어보니 마이크를 잡으면 잘 안 놓는 스타일이라고 하더라. 정무수석은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들어주는 자리니까 많이 듣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국회, 언론 등의 다양한 의견을 많이 듣고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들을 자세가 돼 있을 때 가능하겠지만.”

―박 당선인은 “야당과 협의하겠다, 여야 지도자연석회의도 개최하겠다”고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다. 내가 정무수석 때였는데, 이라크 파병 문제가 불거지니까 노 대통령이 국회 국방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그런데 (야당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싹 빠져. ‘청와대 가면 변절자 된다’는 분위기였다는 거다. 노 대통령 취임하고 얼마 안 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외국 나간다길래 ‘외국 나가기 전에 차라도 한 잔 하면서 보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그쪽에서 거절했다. 적어도 우리(민주당)는 그런 자세는 아니다. 박 당선인이 잘 해주기를 바라고. 다만, ‘당신 마음대로 끌고 가는 걸 용인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뭐 첫 관문인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한 당선인 태도를 보면 상당히 우려스럽다. 정치는 서로 생각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 간 타협의 산물인데, 타협을 하겠다고 생각해야 상생의 정치, 생산적 정치가 가능해질 것 아닌가. 다 정해놓고 ‘밥 먹자’ ‘만나자’ 하면 청와대 갈 사람이 없겠지.”

―야당과의 관계맺기에 대해 조언한다면….

“여야를 숫자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대선 때) 박 당선인을 찍지 않은 48%를 끌어안으려면 48%가 지지한 야당을 파트너로 생각하고 존중해야 한다. ‘나를 따르라’는 불통 스타일로 국정운영을 할 경우 대결적 관계가 된다.”

―청와대 비서실 개편을 평가한다면….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해서(격상시켜서) 육군참모총장 지낸 사람을 앉혔는데 국민이 잘 납득이 안 될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경호를 맡고 있는 사람이 전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청장(차관급)보다 높다는 건 대통령 한 사람의 안위가 국민 전체의 안위보다 더 소중하다는 얘기인지…. ‘작은 청와대’라고 했는데 상시 장관급이 3명(3실장 체제)이나 돼서 작은 청와대인지는 모르겠고…. 비서관들은 좀 줄인 것 같은데 얼마 안 가서 다시 늘리지 않을까. (대통령) 하다 보면 필요할 거야(웃음).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수석들하고 현안 점검하려면 각 부처 현안을 꿰차고 있는 비서관이 필요하거든. 줄여놓으면 국정 전반을 파악하는 게 어려울 거야. 내 생각에는 도로 늘릴 거야.”

―내각 인선을 평가한다면….

“류길재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합리적 중도 인사다. 처음에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선 때 절망했던 것에 비해선 낫다. 그런데 대통령비서실 인선은 약체라는 느낌이 든다. 허태열 비서실장 내정자는 색깔론 발언도 그렇고, 동생이 공천 대가로 5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던 일도 있어 이미지에 타격이 있겠다.”

―당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불법선거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정원장 인선이 아직 남았는데….

“외부의 대통령 측근이 국정원장으로 가면 과잉 충성 논란에 휩싸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서울시에 있다가 국정원장이 된 원세훈 원장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신뢰하는 사람을 기용하더라도 국정원에서 커 온 사람(내부 인사)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 또 박 당선인이 국정원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새 국정원장으로 하여금 그 사건(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자체적으로 조사하게 해야 한다.”

―22일로 활동이 종료되는 박근혜 인수위를 평가한다면….

“이명박 인수위 때보다는 좀 낫다. 그때는 아륀지(orange)니 뭐니 어설프게 터져 나와서 그게 촛불(시위) 맞은 것 아니냐. 요란 떨지 않은 건 점수를 주고 싶다. 반면 베일에 싸여 있는, 음지에서 일하는 조직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취재가 안 돼 기자들도 고생 많이 한 모양이데.”

―박 당선인과는 죽 의정 활동을 함께했다. 박 당선인은 어떤 정치인이던가….

“17대 국회 때 박 당선인이 당(한나라당) 대표였는데, 소속 의원들과 그다지 소통이 없었다.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때 한나라당에선 동조 의견이 많았는데 박 당선인은 반대 입장이었다. (우리당 출신인) 김원기 국회의장이 소위 ‘친박(친박근혜) 중진’들을 만나 막후 대화를 하려 했는데 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말 붙이기도 어렵다’고…. 그때(여당일 때) 우리도 실수한 게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돼야 할 악법이다’ 하고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는데 아직 국민정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친다’란 거였거든. 타협을 했어야 했는데…. 강경파가 주도하면 타협도 안 되고, 국회도 필요 없게 된다. 우리가 강경파 주장에 끌려간 건 실수였다. 그런 식으로 가면 상생의 정치가 아닌 대결의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 민주통합당 유인태 의원 프로필


△1948년 충북 제천 출생 △1967년 경기고 졸업 △1974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 4년 4개월 복역, 2012년 2월

재심에서 무죄 확정) △1987년 대통령후보단일화 국민협의회 상임위원

△1990년 국민통합추진회의 운영위원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

△2003년 2월∼2004년 2월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2006∼2008년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 최고위원

△2013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민주캠프 ‘진실과 화해 위원회’ 위원장

△14·17·19대 국회의원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민경진 인턴기자 부산대 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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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태#강경파#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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