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장 ‘무늬만 공모’]정권 초기엔 희망자 밀물… 정권 말기엔 공공기관장 구인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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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면 언제 쫓겨날지 몰라”… 서로 등 떠밀어

현 정부 초기만 해도 기관장을 공개모집하면 각계의 지원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를 개혁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새 정부의 약속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권 말에 접어든 최근 공모의 풍경은 180도 달라졌다. ‘무늬만 공모제’란 불신이 깊게 뿌리 내린 데다 정권 말에 기관장이 됐다가 대통령이 갈리면 임기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유력 후보들이 지원 자체를 꺼리고 있다.

올 4월 사장을 공모한 예금보험공사는 지원자가 1명밖에 없어 공모 마감기한을 두 차례나 연장해야 했다. 물망에 올랐던 금융당국의 고위 관료들이 자신은 지원을 꺼리면서 다른 사람의 등을 떠민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김주현 전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사장직 지원이라는 ‘부담’을 받아들여 예보 사장에 취임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 말에 기관장이 되면 ‘지난 정부 사람’으로 낙인찍혀 차기 정부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민간 금융권 관계자들도 금융 분야 고위공무원 출신으로 자리를 채우는 예보의 ‘낙하산 인사 관행’을 잘 알기 때문에 아예 지원을 하지 않아 사장감을 구하는 데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직의 위상과 연봉 등 조건이 탁월해 평소라면 지원자 이력서가 산더미처럼 쌓이던 인기 공공기관장의 공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8년 사장 공모 당시 각각 49명, 22명이 무더기로 지원했던 KOTRA와 한전은 지난해 진행된 공모 때 지원자 수가 모두 한 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출범 당시 21명이 지원서를 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자리도 이지송 현 사장의 연임이 유력시되면서 후임 공모는 아예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한 정부 부처의 인사담당 공무원은 “정권 초기에 임명된 기관장들의 임기가 한꺼번에 끝난 지난해에 ‘공기업 사장 인력난’이 심했지만 정권의 끝이 보이는 지금은 공무원, 민간, 정치인 등 출신을 막론하고 공기업 사장에 지원하려는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공공기관장#공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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