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작가 림일이 쓰는 김정일 이야기]<9>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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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절할 정도로 통곡하면 출세… 어찌 울지 않겠나

김일성 사망 때와 똑같이 조선중앙TV에는 매일 김정일 사망에 통곡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나왔다. 그것을 본 남한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친부모가 죽어도 사흘이면 눈물이 마르는데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열흘이나 저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낼까. 저게 진짜 눈물일까, 가짜 눈물일까. 가장 폐쇄적인 사회에서 사는 북한 주민들은 평생토록 “김일성 김정일 싫다”는 말을 못하고 산다. 그랬다가는 3대가 멸족이다. 그러나 그들도 의식이 있기에 속으로는 ‘그들이 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김일성이 생전에 해마다 TV에 나와 신년사에서 “인민에게 쌀밥에 고깃국 먹여주겠다”던 새빨간 거짓말, 인민의 입에 재갈을 물려 놓고 “우리 인민은 참 좋은 인민”이라고 우롱한 김정일의 뻔뻔함을 그들도 알고 있다. 남한 사람들 같으면 “왜 작년에 했던 말 또 하고 지키지도 못하느냐” “왜 당신 사진만 찢어도 감옥에 보내느냐” 하고 항의했겠지만 북한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 (영상) “평양은 울지만 지방은 좋아서 난리”


무능하고 잔인한 지도자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원망을 평생 마음속에 담고 산 북한 주민들인데 이들의 사망에 왜 오열할까. 그들도 감정의 동물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가짜냐 진짜냐를 떠나 그냥 눈물이다.

필자가 평양에서 김일성 사망 당시 흘렸던 눈물의 비밀은 이랬다. 분향소를 대신하는 김일성 동상과 사적비 부근 대형 스피커에서 추모곡이 흘러나온다. 거기에 김일성의 일대기를 흥분한 어조로 낭송하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조문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자제력을 잃고 쉽게 흥분하거나 다른 사람의 언동을 따라하는 군중심리도 발동한다.

또 북한에서는 정치적 행사에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없다. 설령 더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려는 독자 행동도 용서가 안 된다. 모든 사람이 소속된 조직과 단체에서 당비서(정치담당 간부)의 지시에 따라 질서 있게 행동한다. 조문이 24시간 중에 단 1분도 비우지 않고 열흘 동안 계속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애도 기간 같은 큰 정치행사에서 조금이라도 불순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낙인이 붙어 평생토록 불이익을 받는다. 반대로 땅을 치며 통곡하는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승진도 쉽고 출세도 이뤄진다. 그러니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가뜩이나 이 엄동설한에 배고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북한 주민들인데 김정일 사망으로 애도의 눈물까지 흘려야 하니 세상에 그들만큼 불쌍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진짜든 억지든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인민들을 위해 김정일은 단 한 번이라도 운 적이 있을까. 오래전에 굴뚝 연기가 멎은 공장에 나와 김일성 학습을 하는 고된 노동자들, 흉년에 한숨만 짓는 농민들, 영양실조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린이들의 눈물겨운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배고파 굶어 죽고, 추워서 얼어 죽고, 지도자를 비판했다고 맞아 죽어야 하는 인민들이 굶주림을 참다 못해 중국으로 탈출해 초라한 몰골로 숨어 다니는 개보다 못한 처지를 알기나 했을까.

신이 주신 똑같은 생명의 가치를 김정일은 너무나 다르게 알았다. 잘났든 못났든 인민들 덕에 그는 세상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 인민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데 외국 은행에 수백억 달러를 숨겨 놓았으니 북한 주민들이 그 사실을 알면 정말 통곡하지 않을까.

림일 ‘소설 김정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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