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작가 림일이 쓰는 김정일 이야기]<4> 방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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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청소 좀…” 金 한마디에 100만명 걸레질

북한 주민들이 10월 평양 만수대지구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준공 날짜는 노동당, 즉 김정일과 한 약속이나 다름없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동아일보DB
북한 주민들이 10월 평양 만수대지구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준공 날짜는 노동당, 즉 김정일과 한 약속이나 다름없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동아일보DB
조선노동당의 방침은 곧 김정일의 지시다. 법과 국가 위에 있는 노동당이기에 그의 지시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 지상의 명령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반대도 있을 수 없다. 2000만 인민이 절대적으로 따른다.

북한의 모든 기관과 단체는 장기적인 사업계획은 물론이고 각 부서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노동당, 즉 김정일의 승인을 받아 집행한다. 예를 들어 모 건설회사에서 올린 사업계획에는 언제까지, 어디에, 어떤 형태로, 몇 채 주택을 짓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준공 시기는 주로 김일성 김정일 생일을 포함한 국가적 명절에 맞춘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다 보니 부실공사가 많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정일과 한 약속이나 다름없기에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공사 인부들이 어떤 조건에서도 한목숨 바쳐 맡겨진 과제를 무조건 수행하겠다는 ‘충성의 맹세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름 모를 두메산골의 작은 살림집 건설에서부터 사상 최대의 건축물인 서해갑문(대동강 하류에 70억 달러를 들여 완공한 남포지역 갑문) 시공까지, 나라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김정일 결재하에 이뤄진 1980년대 이후 시행된 북한의 건설은 대부분 부실공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평양에 있을 당시인 1996년 말까지 광복거리와 통일거리의 고층아파트 수십 동 중에 수직선이 정확한 아파트는 거의 없었다. 남한에도 널리 알려진 평양의 냉면전문점 ‘옥류관’ 근처인 만수대지구에서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의 성과물로 현재 요란하게 진행 중인 30∼40층 고층아파트 10여 동 건설도 마찬가지다. 건설장비보다 인력이 더 많으니 공사가 더딜 수밖에 없으며 준공기일을 맞추려 24시간 작업을 한다. 비록 부실공사라도 기일을 맞춰야 훈장과 포상이 주어진다. 건설공법을 준수한다며 완공 시기를 연장했다가 책임자가 옷을 벗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상) 金일가 호화생활 책임진 비밀기구 ‘88과 ’베일 벗긴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일의 지시는 무조건 집행해야 할 과제고 의무다. 어느 날 김정일이 지방 출장을 마치고 평양으로 들어오며 “시내가 어지럽습니다. 청소 좀 하시오”라고 했다. 한 시간 뒤 100만 평양시민이 물통과 걸레를 들고 나와 방을 청소하듯 도로와 건물을 닦으며 “장군님께 심려를 끼쳐드렸으니 인민이 된 도리가 없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절대 신과도 같은 김정일의 지시는 때로 피곤하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 언젠가 현지지도 길에서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성들을 본 그가 “우리 미풍양속으로 봐도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지”라고 했다. 다음 날로 여성들의 바지 착용이 중단됐다. 부작용도 나타났다.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니 불편했고 결국 여성 근로자들의 출근 때 지각 사태가 생겼다. 그만큼 일을 못하니 국가는 손해였다. 그래서 관련 일꾼들이 제의서(방침을 받기 위한 서류)를 올려 자전거를 타는 여성에 한해 바지 착용을 허락받았다. 지금은 여성들이 일상생활 때 바지를 많이 입지만 명절과 기념일, 국가적 정치행사 때는 조선옷(한복)을 입는다. 물론 노동당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김정일의 결재 종류에는 친필지시, 지시, 방침 등이 있다. 친필지시는 최고 등급으로 정치 외교 대남 부문에, 지시와 방침은 중간과 보통급으로 국내 모든 부문에 내려졌다. 최측근은 친필지시, 간부는 지시, 인민은 방침으로 통치했다.

‘소설 김정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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