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작가 림일이 쓰는 김정일 이야기]<3> 동상과 사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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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주민 “김일성=김정일”… 父동상 찾아가 애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진. 후계자인 김정은과 함께 평양 용성식료공장을 찾았으나 방문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동아일보DB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진. 후계자인 김정은과 함께 평양 용성식료공장을 찾았으나 방문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동아일보DB
애도기간에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동상을 찾아 통곡하는 모습을 보며 “김정일이 사망했는데 왜 김일성 동상에 가서 우는가”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평양과 지방, 각 기관과 유적지에 세워진 수천 개로 추정되는 김일성 동상에 비해 김정일 동상은 거의 없다. 물론 그것을 세운 사람은 김정일이다. 아버지이자 곧 자기였기에 굳이 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북한 주민에게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명동인이다. 사상과 지도력, 성품부터 인품까지 모두 똑같은 지도자로 교육받아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북한 도시의 광장과 공공장소에서 산골의 마을회관까지 어김없이 김일성 김정일의 대형 사진이 있다. 굳이 비교하면 남한에서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는 곳곳마다 있는 상업광고판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생전 김정일의 현지지도 사진을 보면 단골 의문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장소와 날짜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들도 고개를 가로젓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비밀이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살벌한 생존경쟁만큼 치열한 김정일 충성경쟁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경합해 선택된 특정 기관과 장소가 바로 그의 현지지도 대상이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과거 시찰과 비교해 장소와 날짜가 같은 경우도 간혹 있다. 또한 국제적인 타이밍과 시선까지 충분히 고려해 신비주의를 관전 포인트로 맞춰 홍보하려는 보좌진의 계산도 들어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 내보낸 김정일 현지지도 사진에는 언제나 정중앙에 그의 얼굴이 맞춰져 있고 장소와 날짜, 시간이 없다. 이는 사소한 의심과 비난의 단서가 될 요소를 추호도 남기지 않으려는 치밀한 의도다.

북한에서 김정일의 얼굴 사진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주요 관공서와 공장, 농장의 현관과 대회의실, 각 사무실은 물론이고 일반 주민이 사는 모든 가정에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80년대 초반부터다.

인민과 국가 위에 있는 최고지도기구인 노동당의 선전대로 김정일이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여서 인민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기관과 단체에서는 순번제로 각 사람이 매일 아침 1시간 일찍 나와 김정일 초상화를 닦아야 하는데 이게 ‘충성의 점수’로 승진이나 진급에 효과적이다. 남한 학생들의 ‘자원봉사 점수’가 대학 진학 때 유리한 것과 비슷하다.

미지의 세계, 북한에서는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주민들은 당연히 방 안에 걸린 김정일의 초상화를 가장 먼저 꺼내온다. 생명을 위협하는 화염 속에서 자기 몸에 치료 불능의 화상을 입으면서까지 말이다.

여기서 김정일 초상화를 꺼내온 주민이 살았다면 그는 즉석에서 공민의 최고 영예인 ‘공화국 영웅’이 된다. 노동당 감사편지는 기본이고 다음 날로 직장에서 특별 승진한다. 고가의 선물을 받음은 물론이요, 필요하면 고급주택도 받는다. 잿더미가 된 화재 현장에서 김정일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죽었다면 그는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청소년의 교육용 교과서에 실리는 훌륭한 귀감(모델)이 된다. 그 가족과 후손은 국가에서 끝까지 책임진다.

강제든 자의든 생존 본능의 관습으로 굳어진 김정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절대적인 충성심은 우리의 사고방식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림일 ‘소설 김정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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