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6>박세리 선수가 말하는 ‘골프 여왕’ 신지애

  • Array
  • 입력 2011년 4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힘겨운 성장기 이겨낸 긍정의 정신 신체단점 넘어선 노력이 ‘여왕’ 낳아”

2008년 국내에서 열린 BC카드 클래식에서 같은 조로 플레이한 신지애(왼쪽)와 박세리가 티잉그라운드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박세리는 신지애를 “무척 긍정적인 성격인데다 자신감이 넘치는 당찬 후배”라고 평가했다. JNA 제공
2008년 국내에서 열린 BC카드 클래식에서 같은 조로 플레이한 신지애(왼쪽)와 박세리가 티잉그라운드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박세리는 신지애를 “무척 긍정적인 성격인데다 자신감이 넘치는 당찬 후배”라고 평가했다. JNA 제공
지애는 보면 볼수록 사람을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몇 년간 꾸준히 지켜보면서 이런 사실을 새삼 확인할 때가 많았다. 웃을 때 작은 눈에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요즘 라식수술로 안경을 벗어 더 확실하다. 날렵하지는 않지만 단단한 몸매, 어눌한 말투이긴 해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전달하는 모습이 지애에 대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지애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정식 회원으로 처음 출전한 2009년 시즌 개막전 SBS오픈 때였다. 하와이 호놀룰루 인근 터틀베이리조트에서 연습라운드를 하던 날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지애를 만났다. 대부분 한국의 루키 후배들은 열 살 이상 나이 차가 나는 내게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어렵게 느껴지는지 그냥 수줍게 인사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애는 달랐다. 처음 마주친 날부터 “언니, 언니”를 외치며 무척이나 붙임성 있게 잘 따랐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이렇게 긍정적인 성격의 골프 선수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는 당당한 소녀였다. 이 대회에서 지애는 예선 탈락했다. 그래도 나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지애가 지닌 긍정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기대대로 지애가 신인 때 3승을 거두며 나처럼 신인상을 차지하는 걸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지애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습벌레로 통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유연성 운동을 하면서도 그렇게 집중력을 가지고 운동하는 선수는 없을 것 같다. 신체적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끝에 신체조건이 좋은 유럽 선수들에게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밀리지 않게 됐다. 평소 비거리 부담이 있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드라이버를 예전보다 20야드 가까이 더 보내면서 한결 편하게 코스를 공략하게 됐다. 지애는 어떤 근육을 키워야 비거리가 늘어나고 좋은 스윙 조건을 만들 수 있는지 잘 안다. 주변에 좋은 트레이닝 코치가 있기도 하지만 늘 자신 스스로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를 항상 생각하고 이끌어낸다. 지애는 골프 스코어는 파워가 아니라 뛰어난 유연성과 끊임없는 정신력이 좌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애는 나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기에 누구보다 애정이 많이 간다. 아버지와의 혹독하고, 때로는 잔인했던 길고 긴 훈련, 어린 시절에 일찌감치 짊어진 삶의 무게와 가장 역할, 주변의 기대감으로 생긴 압박감까지…. 마치 어릴 적 내가 겪었던 과거를 거울처럼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지애는 일찍 어머니를 하늘로 떠나보내는 아픔까지 겪지 않았던가.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냉정하면서 차분하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지애는 분명 나와 꼭 닮은 점이 있다.

만약 지애가 좀 더 나은 가정환경과 편안한 골프 훈련 여건을 가졌다면 지금처럼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때론 어린 나이에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 오늘의 지애를 만들어낸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골프는 어마어마하게 큰 퍼즐을 하나하나 끼워 맞춰가는 과정과도 같다. 그 크기가 개인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실력이 갑자기 늘거나 운이 따르는 운동이 아니다. 누구보다 지애가 잘 알겠지만 주니어 시절부터 무엇보다 기본기와 마인드를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자신만의 무기를 만드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다. 나처럼 지애도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충만한 자신감은 어린 시절 싹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다. 너무 운동에만 매달리면 어린 나이에 쉽게 지치고 슬럼프를 극복하기도 쉽지 않다. 운동할 때는 즐기고 쉴 때는 취미활동을 즐긴다면 선수생활에 도움이 된다.

지애는 내가 한국과 미국 투어에서 세운 기록들을 하나하나 넘어서 왔다. 몇 년 전 송년회에서 지애가 건배를 제의하며 “우상인 세리 언니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세리 키즈’라는 지애가 정말 자랑스럽다. 지애가 골프뿐 아니라 주변을 아우르고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수준에까지 오르면 나를 충분히 능가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언젠가 지애와 내가 챔피언 조에서 우승을 다투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우리 힘내자!

정리=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