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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초상화의 진정한 주제는 화가와 모델의 교류”

입력 2013-10-19 03:00업데이트 2013-10-2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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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림이 되다
마틴 게이퍼드 지음·주은정 옮김/248쪽·2만5000원·디자인하우스
구상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오른쪽)가 마틴 게이퍼드를 모델로 에칭 동판화 작업을 하고 있다. 디자인하우스 제공
초상화 모델을 할 기회가 있을까. 한다면 첫 자세에 주의해야겠다. “나는 수십, 아니 수백 시간을 왼쪽 다리 위로 오른쪽 다리를 꼬고 앉아 있어야 했다. 반대 방향으로 꼬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부제는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저자는 2003년 11월 독일 구상화가 프로이드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다가 “만약 나를 그리고 싶다면 모델을 하겠다”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 책은 그 다음 주 저녁부터 7개월간 매주 한 번 몇 시간을 똑같은 자세로 가죽의자에 앉아 보낸 저자가 글을 붓 삼아 그려나간 화가의 초상화다.

유채 초상화를 완성하고 한 달을 쉰 뒤 에칭(금속판을 산으로 부식시키는 방법) 동판화를 완성하기까지 다시 9개월. 프로이드는 6년 뒤 89세로 사망했다.

모든 화가가 초상화 작업에 이렇게 긴 시간을 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프로이드는 초상화가 모델로부터 비롯되기를 원했다. 계산적인 구성을 밀어내고 ‘진실의 어색함’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의 바람은 고흐가 자살하기 한 달 전 여동생에게 쓴 편지와 통한다. “무엇보다 큰 열정을 품게 되는 대상. 초상화다. 한 세기 뒤 사람들에게 유령처럼 보일 초상화. 사진의 유사성이 아니라 인간의 열정적 표현에 의한.”

그림을 바라보는 이가 ‘밀랍 인형이 아니라 사람을 그린 것’이라고 납득하는 이유는 뭘까. 모나리자에서 번져 나오는 감동의 정체는 뭘까. “형태를 드로잉하고 채색하는 과정만큼 화가와 모델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가 프로이드의 작업을 지켜보며 얻은 깨달음이다. “초상화의 진정한 주제는 화가와 모델의 교류다. 모델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무언가와 화가가 발견하는 무언가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프로이드를 프랜시스 베이컨과 동급으로 평가했다. 책에는 다른 비평가의 반론도 짤막하게 언급됐다. 모자라거나 넘침 없이 깔끔하게 삽입한 프로이드의 작품들에 대한 견해는 독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진지한 마음으로 무엇이든 그려 본 경험을 가진 독자라면 책장을 넘기며 뭉클한 회상의 시간을 보낼 것이 틀림없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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