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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제 눈에 안경’은 뇌의 장난입니다

입력 2013-10-19 03:00업데이트 2013-10-2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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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쾌감회로 작동원리 쉽게 풀어 내… “1mm 벌레도 짜릿함 느껴”
◇고삐 풀린 뇌/데이비드 J 린든 지음/김한영 옮김/312쪽·1만7000원/작가정신
작가정신 제공
아무리 ‘제 눈에 안경’이라지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사람들은 ‘행복한 바보’ 같다. 남들 눈에는 그저 고릴라처럼 보이는 남자를 마냥 귀엽다며 좋아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남자에게 재밌어 죽겠다며 히죽거린다. 왜 이러는 걸까.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로 신경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랑에 빠지면 뇌의 복측피개영역(VTA)에서 만들어진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측중격핵, 전전두피질, 배측선조체, 편도체에 분비된다. 이 영역이 바로 우리에게 황홀한 쾌락을 선사하는 뇌의 ‘쾌감회로’다. 사랑을 시작할 때 나타나는 이 반응은 코카인이나 헤로인을 투여할 때와 같다. 또 사랑에 빠지면 판단 중추의 하나인 전전두피질이 비활성화되고, 사회인지에 관여하는 측두극과 두정측두 결합부가 비활성화되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 기능이 왜곡된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뇌 부위의 명칭들은 무시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쾌감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본능이며 그 본능은 뇌에 지배당한다는 사실이다. 단적으로 저자는 “오르가슴은 가랑이가 아니라 뇌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실제로 남녀가 신체 접촉 없이 생각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섹스를 하며 쾌감을 추구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자고로 ‘쾌감은 덧없다’, ‘쾌락을 지나치게 추구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이 이어졌고 지금도 법률, 종교, 교육제도의 상당 부분은 쾌락을 규제하는 데 할애된다. 쾌락을 잘못 향유하면? 감옥에 간다.

이 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욕망인 쾌감을 뇌의 쾌감회로를 중심으로 과학적으로 파헤쳤다. 뇌과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도록 친절하게 쓰였고 20세기 중반부터 최근까지 실시된 다양한 실험 사례를 담아 읽는 재미도 있다.

벌레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수억 년간 진화하면서 쾌감을 보존해 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먹고 마시고 짝짓기를 해야 하는데 이런 행동에 수반되는 쾌감은 강력한 동기 부여 기능을 한다. 심지어 흙 속에 사는 예쁜꼬마선충은 길이가 1mm에 불과하고 몸 전체에 뉴런이 302개뿐인데도 쾌감회로를 갖고 있다.

달고 기름진 음식 섭취, 댄스파티, 전자게임, 쇼핑, 오르가슴, 향정신성 약물, 도박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짜릿하게 느끼는 것들을 할 때 쾌감회로가 활성화된다. 쥐가 지렛대를 누르면 코카인이나 암페타민이 주입되는 실험을 통해 쾌감이라는 본능을 날것 그대로 지켜볼 수 있다. 쥐들은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짝짓기를 하지도 않고, 심지어 새끼를 방치하면서까지 미친 듯이 지렛대를 눌러 댔다. 사실 이런 모습은 인간 중독자의 망가진 삶과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명상, 기도, 자선 행위를 할 때도 쾌감회로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쾌감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시종일관 균형 잡힌 과학의 창으로 쾌감을 설명한다. 그는 “중독은 의지박약아가 겪는 병이 아니며 누구라도 중독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많은 인물이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자였다. 샤를 보들레르(대마초와 아편), 올더스 헉슬리(알코올, 메스칼린, LSD), 지크문트 프로이트(코카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아편)도 모두 중독자였다. 또 뚱뚱한 사람을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도 잘못이다. 체중의 약 80%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게다가 우리의 뇌는 이런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강력히 설정돼 있다.

뇌과학의 놀라운 발전으로, 원할 때마다 쾌감을 느끼게 해 주는 기기를 상상하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야구모자처럼 생긴 장치를 머리에 쓰면 언제 어디서든 오르가슴을 느끼되 중독에는 빠지지 않게 조절하는 식이다.

그런 세상은 천국일까? 저자의 질문이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모든 종류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절제를 미덕으로 볼까? 인간 특유의 목표들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쾌감이 도처에 있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게 될까?” 무엇이든 자연의 뜻을 거슬러서 좋을 리 없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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